허윤희 문화부 차장

시작은 사진 한 장이었다. 사람 하나 없는 어두운 예배당, 콘크리트 벽을 잘라낸 십자가 모양의 틈새로 빛이 들어오는 사진.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빛의 교회'라고 했다. 강렬한 빛의 십자가에 매료돼 언젠가 꼭 직접 가보리라 결심했었다.

오사카에서 연수하던 2년 전 기회가 왔다. 관람은 일요일 하루, 예배 시간 이후 3시간만 가능했다. 이미 두 달 치 예약이 꽉 차 있었다. 홈페이지에서 신청을 하고 그날만 기다렸는데, 그사이 오사카에서 규모 6.1의 지진이 났다. 오사카부(府)에서 이 정도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 건 1923년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교회가 있는 오사카부 북부 이바라키시(茨木市)는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 건물은 멀쩡할까. 한적한 주택가에 들어서면서도 불안은 계속됐다.

아, 그날의 빛…. 예배당에 들어선 순간 벅차오르던 감동을 잊지 못한다. 7월 한낮의 태양 빛이 벽에 뚫린 십자가 틈으로 들어와 작은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처음엔 투명한 빛이었다가 틈새 사이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고요한 무채색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싱그러운 초록. 관람객 열댓 명을 안내하던 교회 관계자는 "지진으로 통창 유리가 모조리 깨져 곧 수리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내부가 어수선해 예배 보기도 힘들다"고 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일본 오사카 ‘빛의 교회’.

전 세계 관람객을 매혹하는 '작품'이 그들에겐 그저 예배 보고 기도하는 일상 공간이었다. 연건평 약 50평. 글자 그대로 아주 아담한 동네 교회다. 안도는 "신자들이 정성껏 모은 귀한 돈이라고 하며 제시한 금액은 너무나 안쓰러운 수준이었다"면서 "힘든 작업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결국 이 교회 설계 일을 떠맡았다"고 했다. "이유는 단 하나, 교회 건축을 진심으로 바라는 건축주와 신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산 때문에 단순한 박스형 건물밖에 지을 수 없었다. 약 1년의 설계 기간을 거쳐 폭과 높이가 각각 6m, 깊이 18m의 건물 얼개가 짜였다. 그는 "중세 유럽의 로마네스크 수도원처럼 인간의 정신에 호소하는 엄숙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콘크리트 박스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아마도 인류가 세운 모든 종교 건축의 지향점이 똑같지 않을까. 신성하면서 미적으로 뛰어난 공간, 그러면서도 수많은 사람이 모여 의식을 행해야 비로소 의미가 완성되는 건물. 인도의 아잔타 석굴부터 스페인의 세비야 성당까지 수많은 종교 건축물이 신도들이 한자리에 모일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모든 게 바뀌었다. 평소 순례객들로 가득 찼던 이슬람 최대 성지 메카의 그랜드 모스크가 텅 비어있는 사진을 봤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순례객들을 중심으로 코로나가 확산하자 성지순례 중단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빛의 교회도 문을 닫았다. 홈페이지에는 "긴급 사태 선언 때문에 일요일 예배를 중지한다"며 "건물 견학도 당분간 중지하며, 관람 재개 시기는 코로나 감염 확대 종식을 목표로 한다"는 공지가 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이 된 지금, 우리 시대의 종교 건축에도 물음표를 던져야 할 때가 됐다. 예배를 하되 접촉은 피하기, 2m씩 떨어져 앉기…. 바이러스 전파는 최대한 막아내면서 '믿음'과 '신앙'이란 목적을 담아내는 기발한 상상력이 등장하지 않을까. 먼 훗날, 이 시대의 문화유산으로 남을 새 건축의 형태는 어떤 모습일지. 건축가들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