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이후 주식시장 급락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증권시장안정펀드'가 개점휴업 상황에 처했다. 코스피 지수가 2000선을 넘어서는 등 빠르게 회복하면서 굳이 증안펀드 자금을 투입할 필요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증시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증안펀드가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이러다 칼 한번 못 휘둘러보고 끝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31일 금융 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약 1조원 규모인 증안펀드(다함께코리아 펀드)는 아직 증시에 투입되지 않고, 사실상 전액 예금으로 관리되고 있다. 증안펀드 운용사인 한국투자신탁운용 관계자는 "펀드 조성 후 증시가 안정적 상태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가 증안펀드 조성을 발표한 지난 3월에는 코스피 지수가 1600대였다. 그런데 운용을 시작한 지난 4월 9일에는 1800선까지 반등했다. 이 때문에 원래 1차로 조성하려던 규모(3조원) 가운데 1조원만 마련해 출범했다. 그 이후에도 증시가 연일 상승세를 타면서 지난 29일에는 2029.6까지 올랐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되기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다. '코스피 1600선 사수'가 목표인 것으로 알려진 증안펀드 입장에선 등판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증안펀드에 돈을 댄 일부 출자사 사이에서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증안펀드 도입이 너무 늦어 증시 안정 역할도 못 했는데 돈은 여전히 묶여 있기 때문이다. 금융사들의 자금 조달 비용 등을 고려하면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고 있는 셈이다. 한 출자사 관계자는 "차라리 이 돈이 소상공인 대출처럼 의미 있는 데 쓰였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증시가 안정돼 증안펀드가 아무 역할을 안 하는 게 최선의 시나리오라는 의견도 있다. 비싼 돈 주고 에어백을 샀다고 교통사고가 나길 기다리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얘기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증안펀드 도입 등에 따른 심리적 효과로 증시가 빨리 안정됐다고도 볼 수 있다"면서 "그렇다면 싼 비용으로 사고를 잘 막은 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