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경북 영양군에 있는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 복원센터 복원연구1팀 앞으로 전자문서로 된 공문이 도착했다. 발신지는 285㎞ 떨어진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종보전연구실. 첨부된 이메일에는 정체불명의 암호 같은 숫자와 글자들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서울대공원에서 살고 있는 늑대류 3종(말승냥이·팀버늑대·회색늑대) 6마리에 대한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 정보였다.

말승냥이

호랑이·표범·곰과 더불어 한때 한반도를 호령했던 맹수인 늑대의 흔적을 찾고, 장기적으로는 복원까지도 고려한 연구가 첫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이 염기서열 정보는 앞으로 늑대의 생태를 연구하고, 늑대의 흔적이 발견됐을 때, 또는 반달가슴곰처럼 복원할지를 검토할 때를 대비해 기초 데이터베이스로 활용된다. 동물원 서식 개체 자료를 참고해야 할 정도로 ‘한국 토종 늑대’에 대한 자료는 그간 빈약했다.

이번에 DNA정보를 제공해준 ‘말승냥이’, ‘팀버늑대’, ‘회색늑대’는 제각각의 이름이 있지만 생물학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어 사실상 단일 종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북유럽과 시베리아, 동북아시아에서 베링해 건너 북미 지역까지 폭넓게 서식하고, 무리지어 사냥을 하고, ‘어우우우우우~’하고 울부짖는 바로 그 늑대족(族)의 지역별 분파가 나뉘면서, 제각각 이름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자미와 넙치(일명 광어)를 구분하는 게 레벨 1, 부엉이와 올빼미의 차이점을 파악하는 게 레벨 4쯤 된다면, 늑대·이리·승냥이의 각각의 차이점을 알아내는 건 레벨 13쯤 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늑대의 이미지는 주로 서양의 문학과 영화 등을 통해 구축됐는데 종합하면 ‘느끼하지만 멋지고 남성미 넘치는 짐승’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1970·80년대 초등학생용 아동문학전집으로 많이 읽힌 ‘시튼 동물기’에서 가장 인기있는 이야기인 ‘늑대 왕 로보’는 사람보다 더 인간적인 늑대 지도자의 용맹함과 장렬한 최후를 그렸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숱하게 등장하는 늑대인간 캐릭터도 악당보다는 한(恨)을 품은 상남자로 그려진다.

팀버늑대

여기서 생기는 궁금증 하나. 그렇다면 왜 늑대는 호랑이나 표범, 여우처럼 한국의 전래동화나 민화, 전설에 많이 등장하지 않는 것일까. 구미호(九尾狐)는 있는데 구미랑(九尾狼)은 왜 없는 것일까. ‘늑대(狼)들이 우글거리는 숲(林)’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북한 낭림산맥을 빼면 늑대와 관련해 딱히 떠오르는 지명이 없다는 점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 복원센터의 이배근 운영실장은 이런 점을 짚으며 “늑대 복원에 대해서 보다 신중히 판단해야 하는 대목”이라고 했다. 만주와 몽골 등에 살던 늑대가 비교적 근현대인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본격 한반도로 남하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반도 전역을 ‘오랜 세월 늑대의 땅’으로 보기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일제강점기 무분별한 포획과 벌목 등으로 호랑이와 표범 등이 자취를 감춘 틈을 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온 늑대 무리가 1세기가 안 되는 기간에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 등극했지만, 6·25 전쟁으로 산과 들이 쑥대밭이 되고 급격한 산업화로 녹지가 줄어들면서 자취를 감췄다는 분석이다.

실제 해방 후 휴전선 이남에서 늑대의 서식이 보고된 지역은 강원 삼척, 경북 청송·문경, 충북 충주 등의 산간지역이다. 과거 표범이 지리산에서, 호랑이는 바다 건너 전남 진도에서까지 살았던 것과 비교하면 서식 반경이 상대적으로 북쪽에 치우쳐 있는 셈이다. 자칫 방사된 늑대가 경상남도·전라남북도 등으로 퍼져 나갈 경우 이는 토종 생태계 파괴범으로 지탄받는 황소개구리나 블루길의 번식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늑대라는 종족의 특성상 복원 시도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칫 온 나라가 ‘늑대개’ 천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늑대는 기본적으로 개와 종(種)이 같다. 문정찬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복원1팀장은 “개와 늑대는 유전적으로도 차이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야생에서 인간에 길들여진 개가 우연한 기회에 늑대와 교배돼 늑대개들이 탄생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인공적인 교배로 한 대(代)에서 끝나는 노새(말과 당나귀의 교배종)나 라이거(사자와 호랑이의 교배종)와 달리 대대손손 번식이 가능하다.

회색늑대

요즘 대도시 인근의 주요 산에는 야생화 된 유기견들이 무리지어 살아가며 가축을 사냥하고, 등산객들을 위협하는 상황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사실상 늑대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진짜 늑대 무리와 접촉할 경우 교배와 번식을 거듭하면서 공격력과 생존 능력을 갖춘 우성 개체 중심의 새로운 가계(家系)를 이룰 가능성도 있다. 맹수가 떠난 자리에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가 된 멧돼지들이 새로운 천적을 만날 수도 있지만, 당장 국립공원 내 등산객들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게 된다. 늑대 입장에선 사람이 훨씬 손쉬운 저녁식사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에서 복원이 시작돼 50여 마리까지 몸집을 불린 반달가슴곰은 ‘복원 가능 동물’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한국의 토종 곰인 반달가슴곰은 곰이라고 해도 어마어마한 덩치와 흉포한 성질로 악명높은 불곰·회색곰·북극곰에 비하면 곰 축에 끼지도 못한다. 오히려 초식 위주의 식성과 상대적으로 작은 몸집 때문에 팬더나 안경곰처럼 ‘곰돌이 푸우 같은 곰’ 에 상대적으로 더 가깝다. 전문가들은 “인간과 충돌할 수 있을 가능성, 충돌했을 때 인간이 약자(弱者)로 해를 입을 가능성은 복원의 중요 기준”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늑대를 비롯해 호랑이·표범·스라소니·불곰 등 한반도에 서식했다 자취를 감춘 대형 맹수들에 대한 복원 계획은 현재 유보 상태다. 2018년 환경부가 발표한 멸종위기종 복원 마스터플랜을 보면 우선 복원을 추진키로 한 포유동물은 반달가슴곰·산양·여우·수달·무산쇠족제비·사향노루·대륙사슴 등 7종이다. 이들 동물의 공통점은 설사 등산 도중 마주친다고 해도 사람이 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늑대에 대한 복원이 추진된다고 해도 통제 가능한 제한적인 공간에서 조심스럽게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