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불펜투수 박상원(26)은 공 하나마다 온 힘을 짜내 던진다. 직구는 대개 "으악" 소리를 내고, 슬라이더나 포크볼 등 변화구를 던질 때는 "으이짜, 와삭, 꽥" 등 다양한 비명을 지른다. 견제구만 무음이다.

박상원은 프로 데뷔 때부터 이런 투구 습관을 가졌지만 요즘 논란의 중심에 섰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무관중 경기가 진행되면서 그가 내지르는 함성이 더그아웃은 물론 중계 카메라까지 생생하게 전달되는 까닭이다. "정상적인 투구 루틴으로서 공에 힘을 불어넣는 기합(氣合)"이라고 두둔하는 의견과 "상대 타격에 방해되는 괴성"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17일엔 허문회 롯데 감독이 항의했고, 21일엔 KT 투수 윌리엄 쿠에바스가 박상원을 보면서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고 웃어 논란이 확산했다.

한화 투수 박상원(왼쪽)이 21일 KT와의 경기 9회말 등판해 공을 던지고 있는 모습. 박상원은 투구 때마다 자주 기합을 넣는다. 여자 테니스에선 마리야 샤라포바(오른쪽·은퇴)가 특유의 괴성으로 유명했다.

◇박상원의 '으악'에 놀란 야구계

현장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투수 출신들은 박상원을 옹호하지만, 허문회 감독을 비롯한 타자 출신들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한용덕 한화 감독은 부임 직후부터 박상원에게 "홈런을 맞더라도 더 자신있게 소리 내라"고 훈련시켰다. 쿠에바스가 놀렸을 때에도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와 주심에게 항의했다. 통산 152승을 거뒀던 이강철 KT 감독도 "야구는 원래 시끄러운 함성 속에서 한다. 투수가 손에 뭘 바르는 것도 아닌데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상대 팀 선수를 감쌌다. 반면 포수였던 김태형 두산 감독은 "타자들이 영향받을 수 있다"고 했고, 2루수였던 이동욱 NC 감독은 "배팅에 방해가 된다면 어필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소리 내며 던지는 투수들이 있다. 메이저리그 통산 탈삼진 1위이자 노히트노런을 일곱 번이나 해낸 전설적 강속구 투수 놀런 라이언(73·은퇴)이 대표적이다. 맥스 셔저(36·워싱턴 내셔널스)와 잭 그레인키(37·휴스턴 애스트로스) 등도 '악' 소리를 내며 던진다. 모두 구속이 100마일(시속 약 160㎞)에 육박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메이저리그 '올스타 3루수'였던 맷 윌리엄스(55) 현 KIA 감독은 "내가 타자였다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소리는 잘 안 들릴 것"이라며 "다양한 스타일의 투수가 있다. 소리 내서 던지는 것도 그중 하나"라고 말했다.

기합은 다른 종목에서도 흔하다. 테니스 스타 마리야 샤라포바(33·은퇴)는 비행기 엔진 소리와 맞먹는 특유의 괴성으로 유명했고, 대구FC 골키퍼 최영은(25)도 경기 내내 고성을 멈추지 않아 별명이 '고라니'이다.

◇ "기합, 힘쓰는 데 효과 있다"

스포츠 과학계에선 기합을 '집중력 향상이나 순간적으로 강한 근력을 써야 할 때 사용되는 음성 자극'으로 정의한다. 많은 논문이 기합을 통해 일시적으로 더 많은 운동 신경 세포가 쓰여 근력 증대 효과와 상대 선수의 집중을 방해하는 효과 등을 얻는다는 결과를 공개한다.

2년 전 하와이 주립대 연구팀은 기합과 경기력의 관계를 밝히려고 남녀 종합 격투기 선수 20명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연구팀은 발로 차는 힘을 측정하는 장치를 샌드백 내부에 넣고서 선수들이 각기 다른 기합 소리를 내며 차도록 시켰다. 이 장면을 일반 대학생 22명이 시청하면서 발 차기 방향을 각자 기록했다. 실험 결과 기합을 내지르며 발차기를 한 경우 힘이 약 10% 더 셌고, 보는 사람이 방향을 판단하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고 오류도 많았다. 비슷한 실험을 미국 대학 테니스 선수 대상으로도 진행했는데 기합을 넣은 스트로크와 서브일수록 속도가 빨라졌고 상대는 방향 판단을 헤맸다. 전문가들은 "힘의 순간적 폭발력이 필요한 종목에는 기합이 효과적이고, 장거리 달리기 같은 운동에는 효과가 없다"고 분석한다.

박상원의 '악' 소리는 모든 힘을 쏟아붓는다는 증거다. 그는 지난해 말 불의의 사고로 숨진 팀 후배 김성훈(당시 21세)을 추모하려고 올해 배번을 61번으로 바꿨다. 지난해 7월 김성훈의 프로 첫 승 기회를 자신의 부진으로 날려버린 것이 미안했는데, 후배가 결국 1승도 없이 하늘로 떠나버리자 "성훈이의 번호를 달고 못해선 안 된다"는 마음으로 매 순간 전력투구한다. 그런 박상원에게 시끄럽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