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얼마 전 큰 혼란을 겪은 일이 있었다. 한 한류 스타가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의 사진을 공개했는데, 그 아이템이 뜻밖의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처음엔 '부모님을 닮아 잘생겼다'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풀어갈수록 '잘생기고 예쁜 기준이 무엇인가?' '방부제 미모란 몇 살까지 어려 보여야 하나?' 같은 의문이 스스로 생겼다. 특히 '가장다운 듬직한 모습' '단아한 어머니의 전형' 등 무심코 쓰는 수식어가 낡은 성 역할을 강조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결국 생방송 중에 부랴부랴 원고에서 외모 평가를 모두 걷어내고, 효심에만 포커스를 맞춰 방송을 진행해야 했다.

아이템을 선정하다 보면 무심코 빠지는 '외모 지상주의 함정'이 있다. 가령 여성 연예인이 출산 후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복귀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아이를 낳기 전보다 훨씬 더 날씬해진 모습으로. 이럴 때 유혹이 생긴다. '자기 관리의 끝판왕'이라는 둥, '리즈 시절(외모가 절정에 오른 시기) 갱신'이라는 둥 외모를 칭송하는 수식어를 붙이면 시청자의 구미를 당기는 아이템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복귀 뒤에 살인적인 다이어트가 숨어있다는 건 감춰질 때가 많다. 또 보통의 산모들에겐 저 연예인처럼 살을 못 빼면 낙제점이라는 듯 박탈감을 준다는 것도 놓치기 십상이다.

아이템뿐만 아니라 출연자를 선정할 때도 외모 지상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늘 새로운 출연자를 찾아 헤매는 제작진은, 가끔 여러 출연 후보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맞는다. 물론 이때의 선정 기준은 분명 풍부한 지식과 눈높이에 맞는 언변인데, 간혹 이 기준보단 외모에 마음이 기울곤 한다.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비주얼이 저렇게 좋은데 방송은 연습하면 늘지 않을까?" 기대하고 싶어진다. 방송이 장난은 아니니 결국은 기준대로 선정을 하지만, 잠시라도 그런 고민을 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외모 지상주의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도 방송이 겉모습을 중시하는 것은 변치 않을 것이다. TV는 보여주는 기능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겉모습이 이젠 단순히 예쁜 것이 아니라, 개성과 자연스러움으로 발전하는 흐름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외모 지상주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