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오래 방영된 TV애니메이션이 코로나 사태로 신작 방영이 중단된다. 일본의 국민 애니메이션 '사자에상(사자에씨(氏))'이 오일 쇼크 때 신작 제작이 잠시 중단된 1975년 이래 45년 만에 신작 방영 없이 재방송만 나갈 예정이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일본에서 인기 애니메이션들이 줄줄이 연재를 쉬고 있다.

후지TV는 지난 10일 홈페이지를 통해 "사자에상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당분간 신작 방영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후지TV는 "대신 오는 17일부터 재방송을 내보낼 것"이라고 전했다.

사자에상은 ‘도라에몽’ ‘마루코는 아홉 살’과 함께 일본의 3대 국민 애니메이션이다. 주부 사자에와 그의 대가족의 일상을 그린 애니메이션으로 1946~1974년까지 연재된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일본 서민들의 삶을 시대상에 맞게 그려낸 것으로 유명하다. 높은 인기로 ‘사자에상 증후군(사자에상이 매주 일요일 저녁 방영되는 탓에 방송이 끝나고 다음날 직장·학교에 갈 생각에 우울해지는 현상)’이란 말까지 나왔고, 불경기마다 여지 없이 오르는 시청률로 “일본의 애니메이션 경기 지표”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사자에.
사자에 남편.



TV애니메이션으로는 1969년 후지TV에서 방영을 시작해 석유 파동으로 1975년 2~3월 한 달간 재방송을 한 기간을 빼곤 한 번도 신작 방영을 중단한 적이 없다. 가장 오래 방영된 단일 TV 애니메이션으로 기네스북에도 실렸다. 현재까지 방영된 에피소드만 7500화가 넘고 현재도 매주 일요일 저녁 후지TV에서 방영하고 있다. 역대 최고 시청률은 1979년 9월 기록인 39.4%이며 최근에도 여전히 10%가량의 시청률이 나온다.

후지TV 측은 "2년 전 에피소드부터 재방송에 활용하기로 했다"며 "새로운 방송의 재개 날짜를 가능한 빨리 발표 할 것이다"고 밝혔다.

도라에몽.



한편 코로나 사태로 다른 일본 장수 애니메이션들도 줄줄이 신작 제작이 중단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의 유명 만화 '원피스'의 작가 오다 에이치로도 최근 코로나로 인한 연재를 잠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오다는 지난 6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만화는 매일 그리고 있지만 원피스는 모든 작업이 아날로그라 사람이 모이는 일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베르사유의 장미'로 국내서도 유명한 데자키 오사무의 성인 첩보물 '골고 13' 은 지난 9일 52년 만에 처음으로 제작이 중단됐다.

주간 소년점프 출판사인 슈에이샤는 11일 공식사이트를 통해 독자들에게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 중인 만화가들에게 가능한 한 (코로나) 감염 리스크가 적은 방법으로 집필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며 "원고 완성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해 어쩔 수 없이 연재를 중단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주간 소년점프는 지난달 한 직원이 코로나 감염 증세를 보이면서 21호 발매를 일주일 연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