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제 MBC 사장이 MBC를 방송법상 '공영방송'으로 명문화해 KBS·EBS처럼 수신료 등 공적재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MBC는 주식회사이자 광고를 재원으로 운영되는 상업방송이면서, 공익재단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최대주주로 참여해 사실상 정부와 국회가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준공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박 사장의 주장은 공적인 책무를 더하는 것과 함께 향후 지배구조 변경까지 예고하는 것이어서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기에 노골적으로 수신료까지 언급해 MBC가 경영난 타개를 위해 사실상 정부에 손을 내민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MBC도 공영방송, 수신료 지원 필요"
PD저널에 따르면, 박 사장은 지난 7일 유튜브로 생중계된 한국방송학회 주최 '공영방송의 철학, 제도 그리고 실천' 웹 콜로키움에 발제자로 나와 "공직선거법·정당법 등에선 MBC를 공영방송으로 분류하지만, 공적재원 관련 정책에서는 민영방송의 범주에 포함되는 모순 때문에 MBC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며 "수신료 등 공적재원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할 뿐 아니라, 광고 결합판매제도의 불균형도 있어 이중적 차별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광고 결합판매제도란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가 KBS와 MBC의 광고 판매를 대행하면서 종교 방송 등 군소방송사의 광고를 결합시켜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매체 균형 발전을 위해 KBS·MBC에 부여되는 일종의 공적 책무이다. 지상파이면서 민영방송인 SBS나 종합편성 채널은 결합 판매 없이 모두 자체 미디어랩을 통해 광고를 판매한다.

박 사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방송법 개정 또는 공영방송에 관한 별도의 법을 제정해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의 정의와 범주, 공적책무 등을 구체적이고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면서 “수신료도 특정 방송사에만 주는 기금이 아니라 공영방송 전체 사업의 경비 충당을 위한 것인 만큼, MBC가 수신료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수신료 배분 방식이나 수신료를 받을 수 있는 자격 등에 대해 구체적인 제안을 하지는 않았다.

◇"적자 이어지자 정부에 손 내밀어"
박 사장의 돌출 발언을 놓고, "MBC가 높은 광고 수익을 올릴 때는 상업방송으로서 지위를 누리다가 최근 시청률 하락 등으로 적자에 내몰리자 공적 재원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MBC는 지난해 965억 원의 영업적자를 내면서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1분기 영업적자도 240억 원대로 추정된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MBC 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8일 본지 통화에서 “경제적 어려움은 KBS나 EBS도 똑같이 겪고 있는 문제”라면서 “MBC는 수신료 제도 변화나 수신료 인상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광고라든지 협찬이라든지 다른 상업활동에서 제약 요건들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연구하는 것이 더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MBC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지위를 얻고자 법적 근거를 확보하는 정책을 펴는 건 시청률 등 내용적 경쟁력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면서 “한번 수신료를 받기 시작하면, 지금과 같은 조건에서 수신료를 받게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도 본지 통화에서 “어떤 면에서 수신료는 ‘계륵’인 측면이 있다”며 “수신료를 받는다는 건 그만큼의 책임을 묻는다는 의미이고, 방송에 대한 권력의 ‘영향력’이 더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기금을 받기 시작하면 과거보다 MBC는 더 투명해져야 할 것이고 감사원 감사 등 외부의 간여를 받아야 할 것”이라며 “수신료를 배분받으며 생기는 불편함을 고려할 때 그보다는 다른 공적재원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막강한 여당 파워에 기대려고 하나?"
박 사장의 주장은 MBC를 공영방송으로 규정해 공적 책무를 부여하고 지원 제도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가 중장기 제도 개선 방향으로 내놓은 '방송 공공성 강화 및 미디어 생태계 회복' 과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방통위는 지난 3월 발표한 중장기 방송제도 개선 방안에서 ▲공·민영 방송체계 개편 ▲공영방송의 공공성 확보 ▲방송 재원의 위상 정립 및 다각화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이 방안에선 MBC를 공영방송이 아닌 공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PSB(Public Service Broadcasting)로 분류해 논란이 됐다. 현재 MBC 노조와 경영진은 PSB보다 한 발 더 나아가 확실한 공영방송 체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방송계에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KBS공영노조는 8일 성명서를 내고 “박성제 사장의 발언은 방통위에서 추진하는 중장기 제도 개선 방향과 맥이 닿아 있고, 21대 국회에 MBC 출신이 무더기로 진출하면서 언제든 MBC가 원하는 방향으로 방송정책이 수립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방송계 관계자는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MBC를 공영방송으로 규정하고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이 MBC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으나 관심을 받지 못했던 반면, 여당이 절대 우위를 점한 이번 국회에선 통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또다른 방송계 관계자는 "지난 총선에서 MBC가 KBS보다 더 노골적으로 친여 성향을 보였다"면서 "총선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자 이제 청구서를 내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