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선수가 그라운드를 달리는 ‘전사(戰士)’라면 유니폼은 ‘갑옷’이다. 과거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들의 무운을 빌기 위해 갑옷에 맹수 문양과 주문을 새겨넣었던 것처럼, 축구 유니폼에도 한 시즌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다양한 상징과 문구가 들어가 있다. 최근 속속 공개되고 있는 2020시즌 K리그1 팀들의 유니폼을 보면 저마다의 사연과 목표를 알 수 있다.
◇“우승 트로피는 우리의 것”
2020시즌 울산 현대의 새 유니폼엔 ‘한(恨)’이 서려있다. 지난 2005년을 끝으로 K리그 우승 트로피를 만져보지 못한 울산은 작년 리그 정상 문턱까지 갔었다. 포항과의 리그 최종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14년 만의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1대4로 패하면서 전북과 승점 79 동률을 이뤄 다득점에서 울산(71골)에 한 골 앞선 전북(72골)이 우승을 차지했다. 울산은 2013년에도 리그 최종전에서 포항에 0대1로 패해 우승이 좌절됐던 기억이 있다.
울산은 올 시즌엔 필승의 각오를 유니폼에 다져 넣었다. 유상철, 이천수 등의 스타 플레이어를 앞세워 역대 두 번째 우승을 이뤘던 2005시즌 디자인을 그대로 차용했다. 기존 파란색 줄무늬 사이에 2005년처럼 흰색 줄무늬를 추가했다. 원정 유니폼도 아르헨티나 대표팀 홈 유니폼을 닮은 2005년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따왔다. 줄무늬마다 울산 울주군에 위치한 국보 제147호 ‘천전리 각석’의 문양도 음각으로 새겨 넣었다. 올 시즌 울산으로 이적한 이청용(32)은 “내 별명 ‘청용’과 어울리는 울산의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꼭 우승하겠다”고 말했다.
작년 리그 3연패(連霸)를 이룬 전북 현대는 홈구장 팬들 앞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때마다 나왔던 영국 록그룹 퀸의 노래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의 ‘음파(音波)’를 가슴에 새겨 넣었다. 올 시즌 팀과 재계약 하고 앞으로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필드 플레이어 최고령’ 기록을 새로 써내려가는 주장 이동국은 “올 연말에도 경기장에서 퀸의 노래를 듣겠다”고 했다.
전북은 이 유니폼을 이미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 때 착용했다. 이는 독일 분데스리가 리그 우승을 독식하는 바이에른 뮌헨(우승 28회·최다)의 전통이다. 현재 리그 우승 7회로 성남과 역대 최다 우승 동률을 이루고 있는 전북은 ‘한국의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통있는 명가의 부활
수원 삼성은 새 유니폼 어깨에 빗살 무늬를 새겨넣었다. 팬들 사이에선 ‘용비늘’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이 무늬는 1995년 창단 초기 김호 전 감독의 지휘 아래 리그 2연패(1998·1999)를 이뤘을 때의 유니폼 디자인이다. 최근 들어 ‘명가(名家)’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리그 중위권을 멤도는 수원은 작년 FA(축구협회)컵 우승팀 자격으로 2년 만에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복귀한 만큼 자존심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포항 스틸러스는 올해 홈구장 스틸야드 개장 30주년을 맞아 등 부분에 있던 ‘We are steelers(우리는 스틸러스)’ 문구 대신 ‘Here is steelyard(여기가 스틸야드)’ 자수를 박았다. 원정 유니폼은 1996년 후기리그부터 1998년까지 홈 유니폼으로 사용했던 시안 블루(Cyan Blue) 색상이다. 이 색은 1997년 만들어진 마스코트 ‘쇠돌이’의 갑옷 색깔과 같다. 포항(49골)은 작년 FC서울(53골)과 승점 56 동률을 이뤘지만 다득점에서 밀려 4위를 기록하면서 챔피언스리그 티켓도 아깝게 놓쳤다. 포항 유스팀 출신 이광혁은 “올해엔 꼭 3위 안에 들어 챔피언스리그 역대 최다 우승(3회)팀의 자존심을 되찾겠다”고 말했다.
서울은 소매쪽에 서울의 캐치프레이즈인 ‘소울 오브 서울(SOUL OF SEOUL)’ 문구를 새겼다. 작년 리그 3위를 기록, 3년 만에 챔피언스리그에 복귀한 서울은 붉은색 선보다 검은색 줄무늬 선이 더 굵은 강렬한 디자인의 챔피언스리그 대회 전용 홈 유니폼을 따로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