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전체주의 정권을 자라게 할 자양분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코로나가 무서우니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은 일단 다 접어두어도 되고, 정부가 무엇을 해도 받아들이겠다'는 자세가 전체주의의 문을 열 수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베스트셀러 '폭정(On Tyranny)'의 저자인 티머시 스나이더〈사진〉 미국 예일대 사학과 교수는 지난 1일 조선일보 화상 인터뷰에서 "코로나는 인간 사회를 완전히 다르게 바꿔놓을 중요한 사건"이라며 "하지만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정부가 무엇이라도 해도 된다는 논리는 위험하다"라고 했다. '폭정'에서 자유와 진실의 가치를 선명한 목소리로 호소했던 그는 위기 상황인 지금이야말로 공포가 아닌,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냉철한 판단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라는 위기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 정부가 무엇이든 해도 되는 기회가 아니다"라며 "자유의 가치를 믿는 국민이라면 심호흡 한 번 하고 침착하게 판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침착하게, 전체주의 유혹을 뿌리쳐라"
―'전례 없는'이란 말을 요즘 자주 접한다. 인류가 비슷한 위기를 겪은 적이 없나.
"역사학자에게 최초란 없다. 사실이 그렇다. 가깝게는 100년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이 있었고, 좀 더 길게 보면 고대 이집트에도 전염병이 인류를 덮쳤다는 기록이 있다. '코로나는 완전히 새로운 위협'이라는 말은 정치적으로 굉장히 위험한 표현이다. 이런 공포를 먹잇감으로 삼아 국민 통제를 강화하고, 나아가 전체주의 정권 구축을 노리는 세력에 길을 내줄 수 있다."
―코로나를 계기로 전체주의가 확산할 위험이 크다고 보나.
"거대한 위기는 일반적으로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지도자들에게 유리한 기회를 제공한다. 단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쉽게 '우리'와 '저들'을 나누고 '저들'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지 않나. 전체주의 정권이 즐겨 쓰는 전형적인 구도다. 방역을 이유로 시민에 대한 감시 체제를 강화하기도 용이하다. 여기에 미국·유럽에서의 방역 실패를 들어 '자유 민주주의는 위기에 취약하다'는 메시지를 설파하려는 자들까지 보인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민주주의가 위험하다는 뜻인가.
"반드시 그렇게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우리가 트라우마(큰 정신적 충격)의 기억에 지배당할지, 시민들을 이어주는 연대(連帶)와 극복의 정신에 지배당할지에 달렸다. 큰 위기 이후 이 두 개의 힘은 늘 팽팽히 대립한다. 2001년 뉴욕 9·11 테러 이후의 세상을 뒤돌아보자. 트라우마는 이슬람에 대한 적개심과 이후의 긴 전쟁들로 이어졌다. 하지만 뉴요커들에겐 소방관·경찰 등 희생자에 대한 존경과 재건에 대한 의지가 더 강하게 발현됐다. 코로나 이후에도 이 두 정신의 비슷한 대립이 이어질 것이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명확해 보일 수 있지만, 정치적 구도는 종종 개인들의 선택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코로나 이후의 지향점이 정해질 결정적 시간을 우리는 지금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 민주주의의 위기를 막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나.
"나는 책 '폭정'에 20세기에 일어난 일을 토대로, 전체주의를 막기 위해 명심해야 할 사안들을 적었다. 그중 두 개가 코로나 위기에 특히 더 적용된다고 본다. '진실을 믿어라',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침착하라' 이 둘이다. 진실에 대해선, 예컨대 바이러스가 작동하는 원칙, 정확한 감염자 수 같은 사실들이 중요하다. 누군가 의견이나 주장을 내세워 프로파간다를 설파하려고 한다면 듣지 않는 편이 좋다."
―두 번째 지침인 '침착'은 이런 상황에선 어렵게 들린다.
"하지만 정말 중요하다. 혼란을 틈타 정권이 별다른 견제 없이 포퓰리즘 정책을 펼치기 쉽다는 점은 특히 경계해야 한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코로나 경제 타격을 이유로 대기업에까지 대거 세금 감면을 해주고 있는데, 정신 바짝 차리고 이런 행태를 시민이 견제해야 한단 뜻이다."
◇고전하는 보수 "진실로 승부하라"
스나이더 교수는 지난달 한국의 총선 결과에 대해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중도 보수를 표방한 제1 야당이 참패하지 않았나"라며 "보수의 정신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위기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제대로 된 보수가 점점 줄어드는 듯하다.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이니 미국은 보수 정권이 아니냐고 묻지만, 트럼프는 오히려 전통적인 보수의 정신을 망가뜨리는 사람이라고 본다. 전형적인 포퓰리스트에 불과하다. 영국 등 유럽 몇몇 나라에서 우파가 정권을 잡긴 했지만 이들 역시 이민자 등에 대한 반감을 토대로 한 포퓰리스트에 더 가깝지 '현재와 자유를 지킨다'라는 보수의 정신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보수는 왜 이렇게 기운이 빠졌을까.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세상이 보수와 잘 맞지 않는다. 새로움에 열광하는 인터넷 세상에서 '지속성'을 핵심 가치 중 하나로 삼는 보수는 매력적인 목소리를 낼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듯하다. 이러다 보니 전통적인 보수의 자리까지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가 가져가 버렸고 보수의 원칙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파하는 사람조차 찾기 어려워졌다. 예를 들어 보수의 원칙 중엔 '작은 정부'가 있지 않나. 하지만 지금 코로나를 둔 정부의 결정들을 살펴보면, 공화당이 앞장서서 그 원칙을 깨고 있다. 부자들에게도 돈을 뿌려서 인기를 끌어올리자는 생각만이 보일 뿐이다. 내가 좋아했던 전통적인 공화당원들은 지난 3년간 전부 공화당을 떠나버렸다."
―그렇다고 진보가 도약하는 것 같지도 않다.
"맞다. 미국을 보면 진보인 민주당도 위기에 빠져 있다. 유럽의 경우도 사회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진보당보다는 녹색당 같은 새로운 정당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나는 꼭 보수 혹은 진보가 헤매고 있다기보다는 '전통적 의미의 보수·진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좌파·우파의 양분법은 희미해졌고 포퓰리스트인가 포퓰리스트가 아닌가, 이 구도가 더 명확하게 형성돼 있다. (인터넷 등) 지금의 환경은 포퓰리스트에게 훨씬 유리하다."
―이런 위기를 돌파할 방법이 있을까.
"나는 현재 상황이 '진실의 위기'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진실이 무너지는 시대에 보수는 역(逆)으로 사실과 현실을 부각함으로써 그 가치를 다시 세워야 한다. 지금 많은 나라에선 진보 세력이 '진정한 진보'에서 멀어졌고, 보수는 그런 진보를 욕하면서 '우리가 낫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정적(政敵)을 욕하는 전략만으로 지지받기는 어렵다. 나는 냉철하게 현실과 사실을 직시하고 조심스럽게 실용적인 해법을 도출해가던 보수의 정신이 그립다."
["코로나 후 교육만은 오프라인 돌아올 것"]
달변인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의 역사 강의는 예일대에서 인기가 많다. 그는 강의 때 휴대폰·노트북 등 디지털 기기 일체를 쓰지 못하게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격 강의를 하고 있다"는 그는 본지 화상 인터뷰에서 "코로나 이후에 세상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질 가능성이 크지만 '디지털 교육'만큼은 대세로 자리 잡지 못할 것"이라고도 힘주어 말했다. "코로나가 지나가면 교육은 오프라인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주장으로, 코로나로 인해 교육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완전히 바뀔 것이라는 몇몇 전문가의 전망과는 다른 견해다.
스나이더 교수는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자기 자녀들을 예로 들었다. "나는 모든 교육이 태권도처럼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이란 단순히 지식의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함께 가르치고 습득하는 활동이란 면에서 그렇습니다."
그는 코로나로 인한 광범위한 원격 수업이 디지털 수업을 고착화시키는 상황을 우려했다. "'앗! 교육이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해결되네. 훨씬 경제적이기도 하고'라는 생각이 퍼져 (오프라인) 학교 무용론이 확산하면 우리 사회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수천년 동안 인류는 교사와 학생이 한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 보는 방식을 통해 후세를 교육했습니다. 갑자기 모니터와 마주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180도 바꿔, '비대면 교육 세대'를 대거 만들어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원격 근무는 어떨까. 그는 사무실에 모여 일하는 것이 교육처럼 오래된 방식은 아니기 때문에 원격 근무는 늘어나겠지만, 그 부작용으로 '외로움 확산'이란 사회적 문제가 대두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간 중 상당수는 다른 인간과의 접촉이 없으면 굉장한 외로움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야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 기자들처럼, 세상엔 원격으로는 도저히 완수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이런 일까지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해버리면 문제"라며 '온라인 만능론'을 경계했다.
티머시 스나이더는 누구
미국 오하이오주(州) 출신으로 중유럽·동유럽 및 홀로코스트를 주로 연구해온 역사학자다. 예일대 사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브라운대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전체주의 출현의 과정 등을 다룬 '피의 땅' '20세기를 생각한다' 등의 책을 썼다. 20세기 역사를 토대로, 전체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시민 지침 20개를 담은 2017년의 책 '폭정: 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그는 이 책에 "의견·이데올로기·감정보다는 사실과 진실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년엔 미국 대선에 대한 러시아 개입을 파헤친 책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를 냈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과거와 현재를 과감하게 연결하길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 참여 지식인"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