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쓴 우완 에이스가 나타나면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을 것이다.’

24일 박세웅이 NC와 벌인 연습경기에서 역투하는 모습. 그는 지난 두 시즌의 부진을 씻을 수 있을까.


'구도(球都)' 부산엔 이런 말이 있다. 롯데 팬들에게 '안경 에이스'는 가슴 설레는 말이다. 고(故) 최동원(1958~2011)과 염종석(47)이 그랬다.
롯데 구단 역사상 딱 두 번 맛본 우승에 모두 '안경 에이스'가 있었다. '무쇠 팔'로 불렸던 최동원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책임지며 창단 후 첫 우승을 이끌었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경이적인 활약이었다. 금테 안경은 최동원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1992년엔 안경을 쓴 앳된 외모의 염종석이 혜성같이 나타났다. 루키 염종석은 그해 17승 9패 6세이브(평균자책점은 2.33으로 리그 1위)로 맹활약했다. 그는 포스트시즌에서 4승을 거두며 롯데에 두 번째 우승을 안겼다. 한 시즌 '가을 야구'에서 4승을 혼자 거둔 이는 KBO리그 역사상 최동원과 염종석, 둘 뿐이다.

이 정도면 '안경 에이스'에 대한 롯데 팬들의 믿음이 생길 만하다. 최동원의 1984년, 염종석의 1992년 이후 우승을 하지 못한 롯데엔 올 시즌 부활을 꿈꾸는 '안경 에이스' 박세웅(25)이 있다. 두 선배와 달리 그는 스포츠 고글을 쓴다.

롯데의 '안경 에이스' 계보를 나타낸 2017년 5월의 뉴스 그래픽.


경북고 시절 기대를 모았던 유망주였던 박세웅은 2014년 신생팀 KT에 입단했다가 이듬해 5월 롯데로 트레이드됐다. 그의 잠재력이 폭발한 것은 2017년. 12승6패 평균자책점 3.68로 롯데가 5년 만에 포스트시즌으로 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세웅은 2017시즌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스탯티즈 기준)을 따지면 4.63으로 그해 20승을 거두며 KIA를 우승으로 이끈 양현종(4.56)보다 높았다. 토종 선발로는 장원준(5.41) 다음으로 높은 WAR을 자랑할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보인 시즌이었다.

하지만 박세웅은 팔꿈치 부상 등에 시달리며 2018시즌 1승, 2019시즌엔 3승에 그쳤다. 박세웅의 부진과 함께 롯데도 추락했다. 지난 시즌엔 최하위의 수모를 맛봤다.


올 시즌 박세웅은 찬란했던 2017시즌을 재현하겠다는 각오다. 일단 컨디션은 좋다. 24일 NC와 벌인 연습경기에선 5이닝 3피안타 6탈삼진 2실점(1자책)으로 호투했다. 포크볼에 의존했던 과거와 달리 슬라이더와 커브 등 다양한 구종으로 타자들을 요리했다. 박세웅이 두 외국인 투수 댄 스트레일리와 아드리안 샘슨의 뒤를 받치는 3선발로 든든히 활약한다면 롯데의 이번 시즌 전망은 밝아진다.

그런데 어쩌면 박세웅이 5일 KT와의 개막전 선발로도 나설 수 있다. 샘슨이 아버지 병환으로 미국으로 잠시 돌아간 상황에서 1선발을 맡을 것으로 보였던 스트레일리마저 컨디션이 좋지 않다.

3일 미디어데이에서 9팀 감독이 모두 개막전 선발을 밝힌 가운데 허문회 롯데 감독은 "스트레일리가 몸이 좋지 않아 개막전 선발 투수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 박세웅과 서준원을 비롯해 여러 선수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문회 감독은 스트레일리의 몸 상태를 확인한 후 4일 저녁에야 개막전 선발을 결정할 계획이다. 흘러가는 상황을 보자면 토종 1순위 박세웅의 개막전 등판이 유력하다. 선발 맞대결 상대는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KT)다.

롯데는 연습경기에서 타선이 폭발하며 5승1패로 1위를 기록했다. 민병헌·전준우·손아섭·이대호·안치홍으로 이어지는 상위 타선은 KBO리그 최강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문제는 투수진. 초반 기세가 중요한 상황에서 박세웅이 롯데 팬들이 믿는 '안경 에이스'의 역할을 개막전부터 해낼 수 있을지 관심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