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후 1시 30분쯤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지하 2층에서 '펑' 하는 폭발음이 울렸다. 순식간에 사방이 연기로 가득 찼다. 지하 2층 출입구 쪽에서 일하던 50대 김모씨는 반사적으로 근처에 있던 소화기를 집어들었다. "준범아! 준범아!" 아들의 이름을 외치며 같은 층 안쪽으로 내달았다. 아들(24)이 용접을 하는 위치였다.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를 따라 현장 일에 나섰다. "아버지와 같이 다니며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소화기를 뿌리며 안쪽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았다. 폭발이 일으킨 강풍 때문에 한 걸음도 떼기 어려웠다. 아우성치며 밖으로 나서는 사람들 무리에 휩쓸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건물 밖이었다. "다시 들어가야 해! 준범아!" 건물로 재진입하려는 김씨를 소방대원들이 막았다. 얼마 후 하나둘씩 시신이 밖으로 실려 나왔다. 그중에 김씨의 아들도 있었다. 불에 훼손됐어도 24년간 보아온 듬직한 어깨선은 그대로였다. "제 아들입니다." 김씨는 힘없이 중얼거리다 끝내 자리에 주저앉았다.

30일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화재 현장 인근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피해 가족 휴게실에서 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전날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실내에서 작업하던 38명이 숨졌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근로자들이었다.

이천 화재 현장에서 숨진 38명은 대부분 공사 하도급업체 일용직 근로자였다. 이날도 하루 일당을 벌기 위해 일터로 나섰다 참변을 당했다. 피해자들 중에는 화마가 생사(生死)를 갈라놓은 부자(父子)가 잇따라 확인됐다. 건물 2층에서 일하던 이정우(61)·이상인(35) 부자는 불이 나자 나란히 2층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아들은 화상을 입고 살았으나,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갔다. 부자는 사고 당일 2층에서 냉동 창고 설비 공사에 투입돼 폴리우레탄폼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씨는 전날 부산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해 "내일이나 모레쯤 마지막 작업이 끝날 것 같다"며 "곧 갈게"라고 말했다. 그것이 마지막 통화였다.

2층에서 뛰어내린 아들은 화상과 골절상을 입고 아주대병원에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 아버지 이씨는 30일까지 신원 확인이 되지 않았다. 소방 당국은 "아버지 이씨는 훼손이 심한 시신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누나 이모씨와 매형 김모(60)씨는 시신을 찾기 위해 장례식장 곳곳을 돌았다. 매형 김씨는 "부자가 5년 전부터 전국 건설 현장을 함께 다니며 일했다"고 말했다. 시신을 확인하지 못하고 유가족이 있는 체육관으로 돌아온 누나 이씨는 아무리 찾아도 없는 동생을 부르며 통곡했다.

3층에서 도장 작업을 하다 숨진 강방호(62)씨와 이춘재(42)씨는 작은삼촌과 조카 사이다. 일가인 노병남(66)씨가 일자리를 주선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노씨는 "가족이 뭉쳐 잘 살아보자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며 목이 메었다. 노씨는 유가족이 모인 체육관에서 강씨의 아내 이씨 등을 달래며 "살아남은 사람 중에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그러나 30일 오전 3시 확인한 사망자 명단에 두 사람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끝내 마주하고 싶지 않던 현실이었다. 노씨와 아내 이씨는 서로를 부여안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사별하고 고등학생 딸과 단둘이 살던 박옥재(50)씨도 사망자로 확인됐다. 30일 이천 효자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박씨의 큰형 박강재(62)씨는 "딸을 위해 소방안전관리사 자격증 공부도 하던 막냇동생이 이렇게 가다니 이게 꿈은 아니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