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궁으로 가는 하늘궁 방문을 축하합니다.'
지난 22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양주 장흥 관광지 내 돌고개 앞에 다다르자 커다란 간판이 보였다. 관광지 초입에서 차로 20분쯤 운전해 들어가야 하는 후미진 곳이었다. 차를 세운 뒤 20m 정도 걸으니 잘 다듬어진 잔디밭이 펼쳐졌다. 전방에는 2층 높이의 한옥, 강연장, 5층 높이의 숙박시설 등 여러 건물들이 흩어져 있었다.

한 방문객이 ‘허경영 하늘궁 종합안내도’라는 안내판을 한참 들여다보며 7구역으로 나뉜 일대 지리를 익히고 있었다. 100m 바깥 저 멀리서 ‘하늘궁∼힐링궁 셔틀버스’ 현수막이 붙은 25인승 버스 한 대가 기자 앞을 지나쳐 주변을 돌았다. 어떤 이들은 “하늘궁에 와야 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다”며 걸어 다녔다. 도보로 구석구석 돌아보니 20분가량 걸렸다. 이 일대가 이번 4·15 총선에서 비례 정당으로 20만표를 얻은 국가혁명배당금당의 본산이자, 당 대표 허경영(70)씨가 운영하는 ‘허경영 랜드’다.

22일 오전 양주 하늘궁 입구에 설치된 안내도.
22일 경기 양주 하늘궁 주변에는 허경영 대표의 초상화를 쉽게 볼수 있었다.

허씨는 10여 년 전 ‘IQ 430’ ‘내 이름을 세 번만 외치면 모든 것이 이뤄진다’며 이슈를 만들었다. 허무맹랑한 돌발 언행으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감옥도 다녀왔다. 허씨가 이번 총선에서 국가혁명배당금당의 비례대표 2번으로 나서며 등록한 재산은 92억 원, 직업을 강연업으로 소개했다. 허씨를 잘 아는 한 지인은 “돌고개 일대 100억원대 상당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고 서울 종로구에도 건물을 가진 것으로 안다”며 “불과 몇 년 사이에 이 정도 재산을 모았다”고 말했다.

허씨의 자산 증식에는 강연이 크게 기여했다. 매주 일요일 하늘궁으로 허씨 강연을 듣고자 300~500명씩 몰린다. 대구, 광주, 청주 등 전국 곳곳에서 셔틀버스를 대절해 이곳을 찾는다. 개인차로도 수십대씩 줄지어 온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허씨의 강연 청취료는 10만원, 개별 면담은 20만원씩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하루 강연에 1억 원 이상의 수익을 내는 것으고 알려졌다. 이와 별도로 제2 강연장에는 ‘천국행 입장티켓’으로 불리는 백궁 명패가 전시돼 있다. 백궁 명패 구매자는 죽어서 천국 간다고 홍보한다. 스마트폰 두 개를 쌓은 크기의 명패에는 개인 이름이 쓰여있다. 개당 300만원으로 알려졌다. 문이 굳게 잠긴 강연장 밖에서 유리창 안으로 힐끔 들여다보니 가 족히 수백개는 되어보이는 명패가 빽빽하게 쌓여 있었다.

22일 국가혁명당의 허경영 대표의 거주지로 알려진 하늘궁 1강연장. /조철오기자

강연에서 밝히는 허씨의 세계관은 단순명쾌하다. 자신은 우주 공간을 지배하는 신인(神人)이며 천국인 백궁으로 가는 입구는 하늘궁이라고 소개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도 에이즈처럼 인간이 타락해 백궁에 있는 바이러스를 내려보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코로나가 걱정되면 허경영을 부르면 된다”며 코로나를 향해 “이제 그만 물러나라!”고 명령(?)도 한다. 허씨는 “매일 새벽 백마상을 타고 천국인 백궁을 다녀온다”고 한다.

지지자들은 이곳을 성지(聖地)로 본다. 주말 강연장에서 만난 A씨는 “심장 질환이 있었는데 이곳을 알고 오고 난 뒤 아픔이 사라졌다”며 “좋은 기운을 얻고자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젊은 30대 부부가 60대 부모를 모시고 단체 나들이를 오기도 했다. 허씨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환하게 웃고 함께 오른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운 사진을 바라보며 “역시 허경영”이라고 했다. 기자와 함께 있던 한 공무원은 이를 보고 “합성사진”이라며 “총선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허위사실로 처벌받을수있다 경고하자 몰래 치우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22일 양주 하늘궁 2강연장에 걸려있는 홍보사진. 허경영 대표가 트럼프 미국대통령과 함께 찍었다고 주장하는 사진이다.

강연장 주위는 허씨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넥타이와 검정 정장 차림을 한 경호원 10여명이 주변을 통제한다. 경찰 관계자는 “지지자들이 알아서 찾아와 자발적으로 돈을 내고 가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된 3월부터는 경찰과 양주시의 요청으로 집단 강연은 중단한 상태다. 허씨는 본지 통화에서 “시에서 집단감염 우려로 강연 중단을 요청했고 우리는 최대한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허씨 관련 6개 유튜브 구독자를 단순 더해도 약 40만명이다. 영상별 평균 조회수 수만 회, 일부 영상은 조회수 30만회를 기록했다. 허씨는 이 같은 지지를 기반으로 허경영랜드를 넓혀가고 있다. 허씨가 지난 2015년 처음 이곳에 와서 한옥 1동을 지었다. 그러나 불과 5년 만에 5층 규모의 3개 숙박동, 4개 강연동, 1개 경비동과 수천평 부지를 갖춘 ‘허경영랜드’를 거느리게 됐다. 부지에는 앞으로 하늘궁 본당이 들어설 예정이며 수천 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강연장으로 쓰겠다는 계획이다.

하늘궁이 있는 장흥 관광지는 정부가 국민관광지로 1985년 조성한 수도권 대표 휴양 코스다. 서울 근교의 하천·계곡으로 유명해 관광객들이 많이 찾았고 이때 우후죽순으로 숙박시설, 식당들이 수백곳 들어섰다. 하지만 2004년 서울교외선 운행이 중단되고 타 지역 휴양지로 사람들이 몰려가면서 장흥의 명성은 시들어갔다. 기자가 찾은 지난 22일 장흥 관광지 주변은 ‘임대 문의’ 현수막이 내걸린 건물이 십수채가 보였다. 상당수 식당들은 문을 닫았고 인적이 드물었다. 허씨는 이를 기회 삼아 문 닫은 건물과 땅을 매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늘궁 본당이 들어설 부지는 원래 전원주택 단지로 조성됐지만, 사업 실패로 이를 중단했다고 한다.

22일 허경영 대표 지지자들의 강연동과 숙박동이 위치해 있다.

점차 확장되는 허경영랜드와 몰려드는 지지자를 두고 주민들 사이에서는 만감이 교차한다. 최근까지 주민들은 강연을 반대하는 맞불 집회 신고를 냈고 한 번에 많게는 100명이 반대 집회를 열었다. 장진삼 석현리 이장은 지난 3월 “장흥면은 코로나 청정지역인데 대구, 울산, 진주 등 전국 각지에서 매주 사람들이 몰려와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양주시 관계자는 “국민관광지가 허경영 성지로 넓혀 가는 것에 우려하는 주민들 불만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반기기도 했다. 하늘궁 인근의 식당 주인 B씨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던 이곳이 그나마 몇 년 전부터 허씨 지지자들이 오며 주말 손님이 늘어났다”며 “본당 건물까지 완공되면 장사가 잘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주지역 택시 관계자는 “주말에는 하늘궁 장거리 손님 모시기에 기사들이 경쟁에 나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