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수출입은행이 24일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의 긴급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21일 아시아나항공에 지원하기로 한 자금(1조7000억원)과 저비용항공사(LCC)에 지난달부터 지원하고 있는 3000억원을 합하면 총 3조2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항공업계에 투입하는 것이다. 이날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항공업 대책은 기간산업 지원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병상을 많이 비워놔 환자들이 몰려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엄청난 지원 규모이기는 하지만 비행기의 90%가 운항을 못 하는 상황에서 이 정도 돈으로 대한항공이 버틸 수 있는 기간은 두 달 정도에 불과하다. 정부 지원 없이 생존하기 힘든 상황이다. 재계에서는 "구조적으로 고정비 부담이 크고 부채 비율도 높은 항공업 특성상 정부가 최근 발표한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중 상당액이 항공 분야에 투입돼야 올해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면서 "자동차·조선·해운 등 대규모 긴급 자금이 필요한 산업 분야가 계속해서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KAL 5~6월 빚·고정비 1조6000억원
본지가 대한항공의 월별 채무 상환 규모 및 고정비 지출 전망치를 계산한 결과 5~6월 회사채·은행 차입·금융 리스·이자·ABS(자산유동화증권) 등으로 상환해야 하는 빚은 877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매달 4000억원씩 고정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두 달간 1조6779억원이 필요하다. 그나마 고정비는 이달부터 국내에 근무하는 직원 70%가 최장 6개월간 순환 유급 휴직에 들어가고, 잇따른 운항 중단으로 유류비 지출을 줄인 것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 이후 매출이 80% 정도 줄기는 했지만, 매출로 올리는 수익까지 감안하면 지원금을 더해 상반기는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하반기다. 대한항공이 하반기에 상환해야 할 채무만 3조1623억원에, 6개월간 고정비로 2조4000억원이 필요하다. 하반기에도 여객 운항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면 이 금액을 조달하기 어렵다. 이달 들어 23일까지 대한항공을 이용한 국제·국내선 이용 여객은 20만253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173만4886명) 대비 88.5% 줄었다. 국제선 운항 편수는 같은 기간 72% 줄었다. 최근 제주 노선 예약률이 80%대를 기록하면서 국내선 수요는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대한항공은 여객 매출 중 국제선 비중이 94%를 차지한다.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는다면 자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대한항공은 이날 정부 지원책 발표 이후 입장문을 통해 "위기 극복을 위해 자산 매각, 사업 재편을 통한 재무 구조 개선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최대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고, 시가 5000억원 규모의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팔기 위해 내놨다. 지난달에는 제주도 사원 주택을 300억원에 팔았다.
◇정부 "항공사 국유화 안 해"
아시아나항공 역시 산업은행·수출입은행으로부터 1조7000억원을 지원받더라도 올해 갚아야 하는 채무만 1조원이 남는다. 아시아나 인수 작업을 벌이고 있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를 포기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계속되고 있다.
민간 회사인 양대 항공사에 도대체 얼마의 돈을 넣어야 정상화할 수 있을지 막막한 상황이다. 전략적인 접근법이 필요한 대목이다. 정부는 하반기에도 항공업에 추가 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동걸 회장은 "기간산업안정기금 40조원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대로 또 자금을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2일 7대 기간산업에 4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항공업계 한 임원은 "비행기를 띄우지 못하면 아무리 돈을 퍼부어도 고정비 감당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 국내 항공업을 어떻게 체질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도 정부가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산은이 자금 지원 조건으로 항공사의 영구채를 인수한 뒤 지분으로 전환 보유하거나 이익 공유를 위해 지원 자금 일부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하면서 국유화 논란이 일고 있다. 산은이 인수하는 영구채 3000억원을 주식으로 전환하면 대한항공의 지분 11%를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향후 제3자에게 매각하면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이 위협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해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취재진에게 "항공업계 지원 과정에서 국유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