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스토커가 문 앞에 서 있어요."
"지금 당장 통화가 어렵습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24일 오후 5시쯤 기자가 바둑 여제 조혜연(35) 9단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수화기 너머로 이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씨가 작년 4월부터 지속적인 스토킹에 시달렸고, 이번달 대회 하루 전에도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이 알려진 직후였다. 조씨는 지난 17일 해당 스토커를 고소하면서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한 상태였지만, 여전히 스토커는 조씨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조혜연 9단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이날 “인근을 수사하고 있었는데 학원 앞에 앉아있는 조씨의 스토커를 발견하고 경찰서로 임의 동행해 현재 수사 진행 중”이라고 했다.

조씨는 지난 10일 대주배 ‘남녀프로시니어 최강자전’에서 여성 최초로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대회 하루 전까지 스토킹에 시달렸다고 했다. 결승전을 하루 앞두고 A씨는 조씨가 강사로 일하고 있는 바둑 학원에 찾아왔다. 학원 건물 외벽에 ‘넌 이 말씀을 믿느냐’ ‘극락 영생’ 같은 알 수 없는 낙서를 휘갈겼다.

시작은 작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직업도, 나이도 알지 못하던 한 남성이 조씨를 보러 왔다면서 바둑 교습소에 찾아왔다. 조씨는 “횡설수설 하는 모습을 보고 잘 달래서 보냈다”고 했다.

지옥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A씨는 술에 취해 조씨의 학원을 찾기 시작했고, 건물 외벽에 낙서를 남겼다. “사랑한다” “보고싶다”는 구애는 기본이었다. “더러운 여자” 같은 모욕적인 글도 남겼다. 결국 낙서가 건물 외벽을 뒤덮어, 작년 말 참다 못한 조씨의 아버지가 벽에 새로 도배를 했다.

조씨의 나이 어린 바둑 제자들도 피해를 입었다. 이달 초 A씨는 조씨 학원에 무작정 난입해, 조씨가 자신의 애인이라고 주장하며 소리를 질렀다. 조씨는 “이를 목격한 10살 수강생은 당시의 충격으로 정신적 외상을 호소하고 있다. 또 다른 중학생 제자는 놀란 나머지 시력이 약해졌다”고 했다.

조씨는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고, 국민 청원 게시판에도 스토킹 관련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원을 올렸다. 하루 만에 900여 명이 서명했다. 조씨는 청원에서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현행 스토커 처벌법이 너무 경미하고 미약한 처벌을 해서가 아닌가 여겨진다”며 “스토킹 피해자는 정신적 외상, 불안한 심리상태, 주변인에 미치는 피해 및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현행법상 스토킹은 폭행이나 주거 침입과 같이 ‘다른 법률로 처벌이 가능한 구체적 범죄 행위’가 없는 한, ‘지속적 괴롭힘’이라는 경범죄 항목으로 처벌한다. 범칙금은 8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