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회사원이 매일 기사 7~8건을 골라 페이스북(페북)에 올린다. 일요일은 자체 휴무. 신문 안 나오는 날, 그의 손끝도 하루 쉰다. 온라인 뉴스 스크랩을 일상 루틴으로 삼은 지 2년, 그의 선구안(選球眼)에 공감하며 구독한 이가 2만명을 넘었다.
취미 삼아 시작한 개인 페이지로 2만명을 이끈 인플루언서가 된 비결은 뭘까. 필명 '브랜드보이(Brand Boy)'로 뉴스 큐레이션 페북 페이지를 운영하는 안성은(36)씨를 만났다.
"한 푼 안 받고 짜릿한 뉴스를 골라주는 희한한 뉴스 세일즈맨? 둥둥 떠내려가는 보석 같은 기사를 건져 내는 사람?" 미끈한 정장 차림으로 나타난 안씨가 스스로 뽑아낸 자기 인생의 헤드라인을 말했다. 사고방식도 기사체가 된 듯했다.
뉴스는 나의 운명
―뉴스 중독자인가 봅니다(웃음).
"초등학교 때부터 매일 신문을 4개 이상 읽고 스크랩을 해왔어요. 무대만 페북으로 바꾼 거죠."
―하루에 몇 개나 올리나요?
"평균 7~8개. 신문 10여 개를 정독해요. 지면으로 구독하는 일간지는 조선·중앙·한겨레·한국경제 4개. 나머지는 출근하면서 스마트폰으로 훑고요. 회사 안 가는 토요일엔 집 앞 구립 도서관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가서 구독하지 않는 신문도 몽땅 지면으로 읽어요." 본업은 모바일 금융 플랫폼 토스의 브랜드 마케터. TBWA, 이노션 등 광고 회사에서 10년 가까이 일하고 최근 회사를 옮겼다.
―기자보다 더 열심히 기사를 읽는 것 같아요(웃음).
"공들여 취재했는데 독자를 만나지 못하고 그냥 흘러가 버리는 기사가 너무 많아요. 그 기사들을 선택하고 공유해서 생명을 연장하는 게 작지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뉴스 큐레이션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책을 내려고 한 적이 있는데 잘 안 됐어요. 그때 출판사 편집장이 유명인도 아닌데 SNS를 안 하면 누가 알아주겠느냐고 하더라고요. 2017년 마지막 날, 새해 계획을 세우다가 SNS에 브랜드 얘기를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때 떠오른 이름이 '브랜드보이'. 아내가 10년 같이 사는 동안 제가 하루도 브랜드 얘기를 안 한 적이 없다더라고요(웃음)."
처음엔 네이버 블로그, 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올렸는데 글 올리는 날만 사람이 몰려 지속성이 약했다. 전략을 바꿔 2018년 4월 페이스북으로 뉴스 클리핑을 시작했다. "뭐든 일단 해보는 스타일이에요. 아니다 싶으면 접고 바로 다른 걸 또 시도해 봐요. 스타트업 용어로 '피벗(pivot)'이라고 하죠."
온라인 뉴스 배달부
―뉴스 취사선택 기준이 뭔가요.
"'Everyday TED(미국의 유명한 지식 강연 프로그램)'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뉴스 클리핑을 해요. TED의 부제가 'Ideas worth spreading(알릴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이에요. 그 마음으로 매일 아이디어 씨앗이 될 수 있는, 퍼뜨릴 만한 가치가 있는 기사를 선택해요. 감동, 울림보다는 정보 가치가 있는 실속 있는 기사에 집중하고요."
―당신 기준에서 공유할 만한 기사란 뭔가요.
"세상 사람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잘 파는 사람과 못 파는 사람. 저는 잘 파는 사람의 관점을 보여주는 기사를 큐레이션합니다."
―잘 판다?
"미래학자 대니얼 핑크가 '세일즈맨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서 '현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이 세일즈맨'이라고 했어요. 대통령은 정책과 비전을 팔고, 영화감독은 영화를 팔고, 취준생은 자기가 지닌 가능성을 팔고…. 당장 저는 매일 아침 아홉 살짜리 아들에게 맛은 없는데 건강에 좋은 야채 주스를 팔아요(웃음)."
―'판다'는 행위에 특별히 주목한 이유라도?
"아버지가 광고 카피라이터셨어요. 어렸을 때 밥상머리 대화가 광고, 마케팅이었어요. 반장 선거에서 당선된 날 아버지 말씀이 '오늘 히트시켰구나'였어요. 자연스럽게 '판다'는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됐어요."
카드 외판원까지 한 광고쟁이
대학(일리노이주립대 경영학)을 졸업하고 2011년 첫 직장에 들어갈 땐 독특한 '셀프 판매'를 했다. 광고 회사 TBWA에 들어가고 싶어 무턱대고 대표와 인사팀장 앞으로 자기소개서를 보냈다. 타이틀은 '27년 차 경력 사원을 3개월 동안 무료로 쓴다고?'였다. 3개월짜리 인턴으로 뽑아달라는 읍소였지만, '광고인 아버지 영향을 받아 엄마 배 속부터 광고 커리어를 시작했다'는 자기 PR을 '27년 차 경력 사원'이란 말로 재치 있게 포장해 성공했다.
―광고 회사에선 어떤 일을 했나요.
"TBWA에선 브랜드 전략팀에서 일했어요. 이노션에선 무신사, 데상트, 구글, 우르오스 등의 광고 기획에 참여했고요." 잠깐 현대카드 비정규직 외판원으로도 일했다. "주변에선 멀쩡한 직장 놔두고 왜 험지에 뛰어드느냐고 했어요. 현대카드가 다니던 광고 회사의 고객이라 면접 보는 분들도 의아해했죠."
―왜 그런 도전을?
"제 우상이 잡지 '뿌리 깊은 나무'를 창간한 한창기(1936~1997) 선생님입니다. 서울대 법대 출신 엘리트인데 사법고시는 거들떠도 안 보고 세일즈맨이 돼 미8군에서 성경책을 파셨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한국에 들여와 세일즈 사관학교라는 영업 조직을 만드셨고요. 그분처럼 발로 뛰며 현장에서 세일즈를 경험하고 싶었어요."
―직접 해보니 어떻던가요.
"가입 조건이 까다로운 프리미엄 카드 영업 담당이었어요. 의사는 무조건 패스더라고요. 수술 앞둔 의사한테 무턱대고 갈 수는 없고, 동네에서 쉽게 의사를 만날 수 있는 데가 어딜까 생각해 보니 동물 병원 수의사가 있는 거예요. 서울 시내 웬만한 동물 병원은 다 돌아다녔어요(웃음)."
직장인, 나를 브랜딩하라
―직장인 인플루언서예요. 회사원의 꿈, 투 잡을 하는 건데요.
"운 좋게 일과 취미가 시너지를 내는 경우예요. '덕업일치(좋아하는 것을 파고드는 '덕질'과 '직업'이 일치)'기도 하고요. 뉴스 클리핑으로 돈을 버는 건 아닌데 새로운 기회가 열렸어요." 지난해 책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더 퀘스트 刊)를 펴냈고, 지식 구독 콘텐츠 서비스 '퍼블리', 독서 모임 서비스 '트레바리'에도 참여했다.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하는 직장인이 많아요. 팁을 준다면.
"첫째, 평소 쭉 해오던 일에서 답을 찾으세요. 둘째 'Just do it.' 일단 저지르세요. 빅 픽처부터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 해요. 셋째 '꾸준히만 해도 무조건 상위 10%'라는 말이 있어요. 스스로 만족할 만한 무언가를 제공하고 있다면 기다려 보세요. 버티면 결국 사람들이 알아봐 줍니다. 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