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22일 발표한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 후 고소득자로부터 기부받기' 정책은 코로나 대책에 들어가는 재원 마련의 책임을 일부 고소득자에게 떠넘기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과 정부가 당초 합의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는 소득 하위 70% 가구였지만, 민주당은 4·15 총선 선거운동 기간에 갑자기 지급 범위를 전 국민으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정부와 합의하지 않은 설익은 공약이었고, 정부는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데에는 3조원 이상이 더 들어가는 등 재정 건전성 훼손이 우려된다며 난색을 표했다. 공약(空約)을 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 민주당은 기획재정부를 집중적으로 공격한 끝에 정부로부터 '여야 합의'를 전제로 지급 범위 확대에 동의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래놓고 "긴급재난지원금이 절박하지 않은 국민들의 자발적 기부를 기대한다"고 했다.
◇생색은 여당이 내면서…
민주당이 내놓은 전 국민 지급 방안은 재산·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가구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되, 소득 상위 30%에 해당하는 가구는 수급을 자발적으로 거절하라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한다는 공약을 지켰다는 명분을 세우면서, 이로 인해 추가적으로 생기는 재정 부담은 고소득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민주당은 긴급재난지원금 기부를 외환 위기 당시 벌어졌던 '금 모으기 운동'에 비유하면서 고소득자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2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형편이 나은 분들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부를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 국가 재정을 아끼는 데 효과가 있지 않을까 보고 있다"며 "IMF 때에도 금 모으기를 통해 국민들께서 협력하고 힘을 모았던 경험과 저력이 있다"고 했다.
◇고소득자가 근로소득세 95% 부담
정치권에선 "조세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는 고소득자에게 긴급재난지원금까지 받지 말라는 요구를 하는 것은 조세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작년 11월 발간된 2018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2018년 12월 기준 건강보험료를 많이 낸 상위 30%(전체 20분위 중 15~20분위)가 낸 건보료는 전체 건보료의 62.1% 수준이다.
세금은 건보료보다 소득 상위 30%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크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전체 근로자 중 상위 30%는 전체 근로소득세 38조3078억원 중 94.9%(36조3541억원)를 부담했다.
◇재정 부담 정말 줄어들지 미지수
민주당 방안대로 하더라도 실제 국가 재정 부담이 줄어들지는 확실하지 않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소득 하위 70% 가구에 지급하는 데에는 9조6630억원이 들어가지만,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데에는 13조원 이상이 들어간다. 3조3400억원 이상이 추가로 필요한데, 이 금액 대부분은 적자 국채를 찍어 마련해야 한다.
민주당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7조6630억원 규모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심사 과정에서 증액하겠다는 계획이다. 기부가 전혀 이뤄지지 않을 경우를 가정해 일단 13조원짜리 사업으로 만들어 집행하고, 나중에 기부금이 들어오면 이를 '세외수입(조세수입 외 수입)'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기부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면, 정부가 당초 예상했던 대로 적자 국채를 3조원 이상 찍어 부족분을 메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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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방식 어떻게
긴급재난지원금이 '100% 지급 후 자발적 기부' 방식으로 확정되면 기부는 지원금 수령을 거절하는 형식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상품권이나 지역 화폐로 지원금을 받은 다음 기부하려면 절차가 번거롭기 때문이다. 지원금 수령을 거절하면 이를 기부금으로 인정해 세액을 공제해 준다는 게 정부와 여당의 구상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한 금품은 법정 기부금으로 인정돼 연말정산에서 15% 세액공제 해 준다. 100만원을 기부하면 15만원을 돌려받는 것이다. 그러나 재난지원금 중 일부만 기부가 가능한지, 재난지원금 기부에 특별히 더 높은 공제율을 적용할지 , 기부금 공제 한도를 별도로 적용할지 등 세부사항은 정해지지 않았다.
문제는 '주겠다는 걸 안 받는 것'도 기부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법정 기부금으로 분류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절차상 해석이 필요하므로 예규 등 포괄적인 의미의 소득세법 개정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행법으로도 수령 거절을 기부로 보고 세액공제 하는 건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다만 공제율을 높이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