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은 다음 달 31일까지 최대 15% 저렴하게 항공권을 살 수 있는 '선불 항공권'을 판매하고 있다. 선불 항공권 판매는 대한항공 창사 이래 처음이다. 대한항공 측은 "코로나 사태 이후 국제선 운항 편수가 90% 이상 감소하면서 매출이 급감하자 이렇게라도 티켓을 미리 팔아 현금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제주항공은 항공권 예약을 취소할 때, 돈이 아닌 포인트로 환불받으면 10%를 얹어주는 제도를 6월까지 시행하기로 했다. 이 포인트는 제주항공 항공권을 살 때 현금처럼 쓸 수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환불을 해줄 경우 곧바로 현금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이 같은 고육책을 꺼낸 것"이라며 "발행한 포인트는 부채로 계산되기 때문에 재무 건전성 악화 요인이지만 지금은 생존을 위해 영혼까지 끌어서 현금 확보를 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텅 빈 여행사 카운터 - 2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출국장에 있는 여행사 카운터가 텅 비어 있다. 항공사들의 국제선 운항이 줄줄이 중단되면서, 하루 평균 20만명을 넘던 인천공항 이용객 수는 최근 2000명 선으로 주저앉았다.

◇"영혼까지 끌어 현금 확보"

저비용 항공사(LCC)를 포함한 국내 항공사 9곳은 매달 항공기 리스 요금과 직원 급여 등 고정비 명목으로 9000억원을 지출하고 있다. 비행기가 뜨지 않아도 매달 1조원 가까운 돈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항공사별 운항 편수는 코로나 사태 이전 대비 80~90% 줄면서 들어오는 돈은 거의 말라버렸다. 돈줄이 말라 유동성 위기에 놓인 항공사들은 선불 항공권을 팔거나 포인트 환불 제도를 도입하는 등 갖가지 묘안을 짜내고 있다. 대한항공은 유휴 자산인 시가 5000억~6000억원짜리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는 물론 300억원대로 추정되는 제주도 사원 주택까지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코로나 사태로 경영 환경이 악화되자 기업들은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아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 본지와 한국경제연구원이 올 들어 21일까지 상장사의 유형자산 처분·양도 공시를 집계한 결과,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쳐 총 30건에 달했다. 토지나 부동산 등 유형자산을 팔아 '현금 확보'에 나서는 기업이 지난해 같은 기간(13건)에 비해 130% 증가한 것이다. 처분·양도 금액도 1조5841억원으로 지난해(6226억)보다 150% 이상 늘어났다.

특히 기업들은 2분기 실적부터 코로나 영향권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신용등급까지 줄줄이 강등돼 자금 조달이 더 어려워질 것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실제로 본지가 국내 신용평가사 3곳의 회사채 신용평가를 분석한 결과, 이달 들어 신용등급이 강등되거나 부정적 전망으로 바뀐 대기업은 한화솔루션·SK에너지·에쓰오일·호텔신라 등 총 16사에 달했다.

코로나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현대차그룹은 전 계열사에 "현금성 자산을 최대한 확보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을 포함해 50여 계열사 임원 1200여명이 이달부터 급여 20%를 자진 반납하기로 한 것도 '현금 확보'에 동참하겠다는 의미다. 현대차그룹의 또 다른 주력 계열사인 현대제철은 서울 강남대로변에 있는 잠원사옥을 매각하기 위해 주간사 선정을 끝냈다.

내수 기업들은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달부터 6월까지 급여 절반을 내놓기로 했다. 지주사 임원과 사외이사, 롯데쇼핑 임원들도 급여 20%를 반납하기로 했다. 신세계그룹 이마트는 지난달 서울 마곡도시개발사업 업무용지를 매각해 현금 8158억원을 확보했다.

다른 법인에 출자했던 주식을 처분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LG전자는 선제적 유동성 확보를 위해 중국 법인 LG홀딩스(홍콩)의 주식 4100여만주를 약 6688억원에 처분했다. 해태제과식품은 주력 자회사인 해태아이스크림 지분 전량을 1400억원에 빙그레로 넘겼고, CJ ENM 역시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 주식 1659억원어치를 처분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코로나 사태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위기 상황으로 불확실성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