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을 획기적으로 앞당길 수 있는 강력한 IT(정보기술) 무기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PC나 노트북이다. 국제 민간 연구 단체가 수십만대의 PC를 하나로 연결해 전 세계에 있는 어떤 수퍼컴퓨터보다 빠른 속도로 백신·치료제 연구에 필요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는 성능을 구현한 것이다.

지난 2000년 폴딩앳홈 사업을 시작한 미 스탠퍼드대의 비자이 판데 교수.

미국 스탠퍼드대가 주도하는 글로벌 분산 컴퓨팅 프로젝트 '폴딩앳홈(Folding@home)'은 최근 세계 곳곳에 있는 일반 PC 100만대 이상을 연결해 연산 능력 2.4엑사플롭(EF)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1엑사플롭은 1초당 100경(京)회의 연산이 가능한 성능이다. 폴딩앳홈은 한 컴퓨터로 처리하기 어려운 방대한 데이터를 여러 대에 나눠 계산하는 방식으로 1초에 240경회를 계산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현존하는 최고 성능 수퍼컴인 미국 오크리지연구소의 '서밋'(1초당 15경회 연산)보다 16배, 일반 노트북보다 800만배 빠르다. 폴딩앳홈은 "2.4엑사플롭은 세계 최고 성능 수퍼컴 500대를 합한 것보다 빠른 성능"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 100만대 PC를 연결하는 '폴딩앳홈' 프로젝트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 표면의 돌기 단백질 구조를 분석한 이미지.

업계에서는 폴딩앳홈의 성과를 두고 "'코로나 의병(義兵)'이 일궈낸 성과"라고 평가한다. 일반 컴퓨터 한 대로는 큰 힘을 내지 못하지만 100만대를 모아 단숨에 고성능 수퍼컴을 뛰어넘는 연산 성능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역설적으로 코로나 사태가 수십년 동안 어떤 기업도 해내지 못했던 엑사플롭급 성능 구현을 이끌어낸 셈이 됐다"고 말했다.

수퍼컴 넘어선 100만 의병 PC

폴딩앳홈은 2000년 미국 등 전 세계 대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시작돼 인터넷에 연결된 수많은 PC로부터 CPU(중앙처리장치) 성능을 조금씩 기부받아 하나의 서버처럼 연결해 고도의 연산 능력을 갖추는 '분산 컴퓨팅' 프로젝트다. PC 사용자들은 전용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설치하면 자신의 PC에 탑재된 CPU나 GPU(그래픽처리장치) 성능 일부를 기부하듯 빌려줄 수 있다.

폴딩앳홈은 2000년대 중반 일본 전자업체 소니의 참여로 한 차례 규모를 키웠다. 소니가 개발한 콘솔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3의 이용자 1500만명이 게임기 CPU 일부를 프로젝트에 기부했다. 이 덕분에 2007년 폴딩앳홈은 최초로 페타플롭(PF·1초에 1000조회 연산) 장벽을 깨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소니가 2012년 폴딩앳홈 사업에서 빠지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참여 PC 규모가 줄더니 올 1월에는 3만대까지 내려갔다.

프로젝트 종료 위기까지 몰렸지만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터진 지난 2월 상황이 반전됐다. 2월에 10만대, 3월 40만대로 폭증하더니 4월 중순까지 50만대 이상 PC가 추가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AMD 등 테크 기업도 온라인을 통해 프로젝트 참여를 독려했다. 폴딩앳홈은 지난달 말 처음으로 전체 연산 능력이 1엑사플롭을 돌파했고, 3주 만에 2.4엑사플롭으로 늘었다. 현재까지 엑사플롭급 수퍼컴퓨터는 개발되지 않았다. 수퍼컴의 CPU 성능을 높이는 데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폴딩앳홈 프로젝트는 인텔, AMD, IBM, 크레인 등 유수의 테크 기업보다 1~2년 앞서 엑사플롭의 장벽을 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분산 컴퓨팅, 어떤 성과 볼까

분산 컴퓨팅 방식은 폴딩앳홈 외에도 외계 신호 분석, 소수(素數·1과 자기 자신만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수) 계산 등 여러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미국 버클리대의 외계지적생명탐사(SETI) 프로젝트는 1999년 개인 컴퓨터가 노는 시간에 전파망원경이 수신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세티앳홈(SETI@Home)'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외계인 신호를 찾지 못한 채 최근 중단됐다.

폴딩앳홈은 이달 초 3주 연구 끝에 코로나 바이러스 표면의 스파이크(돌기) 끝부분이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알아냈다고 밝혔다. 또 코로나의 스파이크를 구성하는 세 종류의 단백질 수용체 중 1개의 작동 방식을 시뮬레이션하는 데 성공했다. 폴딩앳홈은 나머지 2개 수용체의 연구를 추가로 진행해 그 결과를 전 세계 연구기관과 제약사에 공유할 계획이다.


폴딩앳홈(Folding@home)

2000년 미국 등 전 세계 대학·연구소가 주축이 돼 시작된 분산 컴퓨팅 프로젝트. 수많은 개인 PC의 CPU(중앙처리장치) 성능을 일부 기부받아 수퍼컴퓨터처럼 수준 높은 연산 능력을 갖추는 방식이다. 단백질의 접힘(folding) 현상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암·치매 치료제 개발에 활용했고, 2007년 처음으로 1초당 1000조(兆)회 연산 장벽을 돌파했다. 지난 3월 초당 100경(京)회를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