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아니었다면, 두 번도 안 만났을 한 사람 때문에 오늘도 한숨 쉬고 계신가요? 그러나 고개를 돌려보면 그 반대의 경우도 분명히 있겠지요. 가족으로 만나지 않고 다른 인연으로 만났다면 더 좋았을 사람. 어쩌면 마음을 열고 벗이 되었을 한 사람 말입니다. / 홍여사
오늘 저희 집에 소포 상자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인터넷 주문한 상품 배달이 아닌, 누군가 제게 보낸 진짜 우편물이 말입니다. 보낸 사람은 뜻밖에도 제 손위 시누이, 우리 형님이네요. 처음 있는 일인 데다, 언질도 없었기에 상자 속에 뭐가 들었을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하긴 우리 형님 성격에, 말치레가 앞섰을 리 없지요. 혹시나 싶어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그새 메시지가 들어와 있네요. "오늘 소포 도착할 거야. 나한테는 남아돌기에 좀 보냈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습니다. 형님 특유의 저 말투. 처음엔 당황하였었지요. 같은 말이라도, 나보다는 네게 더 필요할 것 같아 보냈다고 하면 좋을 걸, 꼭 저렇게 말합니다. 난 안 먹는 거라, 나한텐 영 안 맞아서….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상대방이 미안해할까 봐 자기가 더 안절부절못하는 성격이라는 것을요. 상자 속에 뭐가 들었을지는 모르지만, 정말로 형님에게 쓸데없이 남아돌아서 보낸 건 아니라는 것을요.
그동안 지켜봐 온 우리 형님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투명인간' 타입이라고나 할까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란 뜻이 아닙니다. 처음엔 잘 안 보이지만 그 존재감이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웬만한 불투명한 사람들보다 더 중요해지는 사람이란 뜻이지요.
아닌 게 아니라, 결혼하고 한두 해 정도는 형님을 의식할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미 결혼해서 직장맘으로 바쁜 분이기도 했지만, 워낙 쿨하고 수월한 형님의 성격 덕이 컸지요. 하나뿐인 시누이가 감 놔라 배 놔라 시누이 짓 하는 타입이 전혀 아니니, 저는 참 운이 좋았습니다. 게다가 시부모님도 너그럽고 신식인 분들이셔서, 이게 웬 복인가 했답니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저는 투명한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습니다. 그날은 제 생일을 사나흘 앞둔 때였는데, 시어머님이 전화하셨지요. 원래는 생일에 어머님댁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었는데, 그걸 취소하자고 하시는 겁니다. 신혼인데, 너희 둘이 오붓하게 보내는 게 좋겠다고요. 앞으로는 봉투만 보내고 며느리 생일상은 안 차릴 테니 서운해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렇잖아도 어머님께 생일상을 받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거든요. 기쁨에 겨운 목소리를 감추고 최대한 얌전히 네, 네, 감사합니다 했지요. 그런데 전화를 끊고 몇 분 뒤, 문자메시지가 날아들더군요. 보낸 사람은 어머님이었는데, 그 내용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네 말이 맞더라. 며느리는 내가 차린 생일 밥 먹는 거 부담스러웠나 보다. 그거 그만하자고 하니, 대번에 고맙다고 하네. 앞으론 딸이 시키는 대로 해야 눈치 있는 시어머니 되겠다."
어머님은 딸에게 보낼 메시지를 실수로 제게 보내셨던 겁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보아하니, 형님이 어머님을 말렸던가 봅니다. 이 한 통의 잘못 배달된 메시지로 저는 그간의 많은 일을 한꺼번에 이해하게 됐습니다. 유독 취소와 번복이 잦으셨던 우리 어머님. 그게 다 형님의 만류 덕분이었구나. 지난번엔 내가 오해했나 보다던 어머님의 쿨한 말씀도, 형님의 작품이었구나.
시누이가 같은 여자로서 제 입장을 살펴준다니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착잡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올케가 예뻐서라기보다는 본인의 친정 엄마가 눈치 없는 시어머니가 되는 게 싫은 마음일 테지요. 그렇다고 저를 잘 알기도 전부터 무조건 시집 식구를 귀찮아하는 '요즘 며느리'로만 보는 것 같아서 그게 좀 불편했습니다. 실상 저를 대하는 형님의 태도는 늘 지나치게 '투명'했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고, 심지어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지요. 최대한 서로 부담 주지 않기 위해, 생일이나 애들 일도 일절 '챙기지 말자' 주의였고요. 무소식이 희소식인 줄만 알자고 하더군요. 그 역시 고마운 배려인 줄 알면서, 한편으론 서운했습니다. 투명한 형님이 저까지 투명인간 만드는 듯이 느껴지기도 했지요. 한 번쯤 속을 터놓고, "형님, 저 그렇게 다 면제해 주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말할까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말은 입 밖에 내놓지 않았지요. 주위에서 다들 말리더군요. 복에 겨운 줄 알라고, 네가 그럼 요즘 며느리지 옛날 며느리냐고, 시집 식구란 다 똑같다고, 괜히 제 발로 호랑이굴에 들어가지 말라고요. 비겁하게도 저는 그 충고를 따랐습니다. 모르는 척 가만히 있었지요. 안부 전화라도 드려야 하지 않나 싶을 때도, 꾹 참고 넘어갔습니다. 감사의 선물이라도 준비해야 싶으면서도, 메시지 한 통으로 때웠습니다. 방패막이 형님이 있으니,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지요. 요즘 며느리는 다 이렇다고 부모님부터 이해시켜 줄 테니….
부끄러운 건 저의 이중성입니다. 저는 원래 이런 얌체가 아니거든요. 친구도 잘 사귀고 나름 잘 챙기는 사람인데, 왜 시집에 대해서만 방어적인 태세가 될까요? 괜히 가까이 지내다가 탈이 날까 두렵다는 것도 핑계입니다. 십수 년 겪어보니, 우리 형님은 원래 성격이 맑고 투명하고, 사심 없는 사람입니다. 사회에서 만났으면, 제가 탐을 내고 접근했을 사람이죠. 그런데도 시누이 올케로 만났다는 이유로 저는 철저히 '거리 두기'를 해왔습니다. 언젠가 우리 사이에 세월의 면역이 생겨나서, 사소한 오해 바이러스 따위는 거뜬히 이겨낼 자신이 생길 때가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그때가 지금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듭니다. 사람을 못 만나고 고립되다 보니 정이 그리운 탓일까요? 아니면 남아도는 시간에 지난 일을 곰곰이 돌이켜보게 된 까닭일까요? 그도 아니면, 그저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일까요? 길지도 않은 인생에 왜 그리 사람을 꺼리고 멀리하며 머리 아프게 살았나 싶습니다. 생각나면 따르릉 전화하고, 부르르 달려가고, 버럭 화냈다가 껄껄 웃으며 살 수도 있었는데….
한숨을 내쉬며, 닫혔던 창을 열 듯 소포 상자를 열어봅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기에, 형님이 소포를 다 보냈을까? 그것도 이런 뒤숭숭한 시국에…. 아, 그런데 이것은….
형님이 보낸 건 마스크였습니다. 어린 조카들 걱정에 최소한만 남기고 보내셨나 봅니다. 서로 부담 주지 말자던 형님의 원칙도, 마스크 앞에서는 깨지고 말았네요.
작정한 요즘 며느리인 저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문자메시지로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깔끔함을 보여야겠죠. 그러나 울컥한 두 손이 그새 저를 배신하고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네요. 신호음이 들려오고, 제 마음은 어느새 촉촉해집니다.
아, 질척대는 건 형님이 질색하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