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는 흰살 생선일까, 붉은살 생선일까?
불그스름한 색에 흰 빛깔이 도는 흔한 이 생선을 두고 '스시효(孝)' 안효주(62) 조리장은 고민에 빠졌다. 일식 조리 경력 40년이 넘은 그의 별명은 '한국의 미스터 초밥왕'. 국내에서 생선에 대해 그만큼 잘 아는 이를 찾기도 쉽지 않다. 안 조리장은 한국과 일본 서적, 인터넷을 다 뒤졌고, 일본의 요리사 여럿에게 물어봤다. 일본 오쿠라 호텔 총조리장 출신인 73세의 선배로부터 "연어는 흰살 생선"이란 답을 듣고 나서야 그도 확신을 갖게 됐다.
안 조리장은 이런 고민과 공부 끝에 최근 책 '초밥 산책'을 냈다. 지난 2년간 퇴근 후나 쉬는 시간에 틈틈이 쓴 원고를 모았다. 초밥의 재료, 초밥을 만드는 과정, 생선의 생태와 음식재료로서 특징뿐만 아니라 초밥을 맛있게 먹는 법까지 알려준다. 그는 "아는 것을 쓰려고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공부를 많이 했다. 연어가 흰살 생선이란 것도 이번에 확인했다. 관뚜껑에 못 박힐 때까지 공부해야겠다"고 했다.
내 요리에 만족하면 그때부터 내리막길
안 조리장은 어렸을 때 고향 전북 남원에서 '권투 잘하는 안효주'로 알려졌다. 전국학생선수권 대회 플라이급 준우승까지 한 그는 권투 선수를 꿈꾸며 상경했다.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식당에서 일했다. 이를 계기로 1978년부터 일식요리를 시작한 그는 1999년 호텔업계 최연소 일식 조리 팀장 자리에 올랐다. 2003년 신라호텔을 그만두고 청담동에 스시효를 차렸다. 일본에서 1000만부가 넘게 팔린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데라사와 다이스케가 한국에 왔을 때 안 조리장의 초밥을 먹고 그를 만화에 등장시키면서 국내에서 '미스터 초밥왕'이라고 불리게 됐다.
―업계에서 대선배이자 스승입니다. 아직도 공부할 게 있나요?
"저는 콩나물처럼 살고 싶습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바가지로 흠뻑 부어주면 콩나물은 자기가 먹을 만큼의 물을 흡수해서 쑥쑥 자라나요. 새로운 것, 몰랐던 것 중에서 저에게 필요한 것을 받아들여서 발전하며 살고 싶어요."
―지금 만드는 초밥에 만족을 못합니까?"제가 만든 초밥을 먹어보면 매번 '이것보다 더 부드럽게,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기술자, 그러니까 '장이'는 결과물에 만족하면 안 돼요. 도공이 도자기를 빚어놓고 감동하는 순간 내리막길을 걷게 될 거예요. 일에서만큼은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편이라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식당의 초밥을 먹을 때는 어떻습니까?
"초밥을 먹고 싶을 때 먹어야 하는데, 그런 적이 별로 없네요. 스시효 초밥의 맛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자주 먹어서 그런지 배고플 때 초밥 생각이 안 나요. 가끔 다른 식당의 초밥을 먹긴 하지만, 그것 역시 공부하기 위해 먹는 것이라서…."
―집에서 초밥을 만들 일은 없나요?
"아들이 날것을 못 먹습니다. 여기(스시효)에 오면 계란말이나 익힌 새우를 올린 초밥 정도만 먹죠. 딸도 어릴 땐 날것을 못 먹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온 뒤엔 조금 먹어요. 아내도 마찬가지고요. 초밥을 좋아했다면 제가 집에서 만들어줬을 텐데."
―의외입니다.
"저도 처음 일식당에서 일을 시작했을 땐 계란말이 초밥밖에 못 먹었어요. 애들 어릴 때 소풍날엔 언제나 김밥을 싸줬습니다. 선생님이 제 김밥이 그렇게 맛있다고 그랬대요.(웃음)"
―엄격한 선배일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땐 후배의 실수에 크게 화를 냈죠. 저도 선배한테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나중에는 그렇게 한 게 창피해졌어요. 요즘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직접 보여줘요. 기술자는 인정받을 만한 기술을 보여줘야 다른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따릅니다. 이제 '까라면 까'는 시대도 아닌데 선배가 솔선수범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죠."
―요새는 인터넷으로도 요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 나온 대로 요리를 하면 맛이나 모양을 비슷하게 흉내 낼 순 있어요. 하지만 깊이가 있을까요? 그건 시간이 걸려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식, 특히 초밥에서 위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은 건 요리를 시작한 지 20년쯤 됐을 때였어요. 그건 책이나 스승이 아니라 20년의 시간과 경험을 통해서 배운 겁니다."
매너 없는 손님? 아기라고 여기면 됩니다
안 조리장은 책의 마지막 장(章)에서 생선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는 초밥을 "그들(생선)에 대한 경건한 예의에서 비롯된 신의 은물(恩物)"이라고 표현했다.
―생선에 대한 애정이 엿보입니다. 그래도 단 하나의 생선을 꼽는다면?
"고등어! 다른 생선도 숙성하지만, 고등어에겐 그 과정이 더 중요해요. 향을 살리고 진한 맛을 낼 수 있거든요. 생선의 상태에 따라서 그 방법을 달리해야 하고, 소금과 식초의 양이나 숙성 시간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초밥집의 개성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죠."
―초밥 애호가를 위한 책인가요.
"전문가를 위한 책은 아니고, 사람들이 초밥을 더 맛있게 먹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책입니다. 생선이나 쌀 등 초밥 재료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그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거든요. 원래는 식당을 이용하는 매너, 에티켓에 대한 책을 쓰고 싶었는데, 출판사와 주변에서 그런 책은 독자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 같아서 거부감을 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왜 그런 책을 쓰고 싶었나요.
"예를 들어서 다다미방에 식사하면서 맨발로 들어가는 손님이 있어요. 맨발로 왔을 경우를 대비해 슬리퍼를 갖다 놓는데 그것도 안 신어요. 발에서 나온 땀이 다다미에 배는데 그건 씻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이런 건 몰라서 그런 거니까 책을 읽고 배우면 되죠. 스시바(bar)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널브러지다시피 앉아서 먹는 사람도 있어요. 정성 들여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를 눈앞에서 보고도 하대하기도 하고요."
―어떻게 대응합니까.
"예전에는 화가 나면 음식을 그만 만들었어요. 손끝에서 독이 나오는데 어떻게 그 손으로 요리하겠어요. 언젠가부터 화를 삭였고, 나중엔 화가 안 나요. 그런 사람은 너무 작고 불쌍해 보이게 됐거든요. 어른은 어른인데 기저귀만 안 찼지, 아기나 다름없으니까요. 아기라고 생각하고 대하면 됩니다."
―요리한 지 20년이 넘었을 때 개업했고, 식당을 연 지도 20년이 다 됐습니다. 다른 계획이 있나요.
"첫째, 일본에서 초밥을 만들고 싶습니다. 도쿄는 임대료가 비싸니 후쿠오카에서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들었고,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있어요. 일흔이 넘어 거기서 시작하긴 어려울 테니 곧 해야겠지요. 둘째, 초밥 아카데미나 학교 같은 것을 만들고 싶어요. 조리학교를 나온 직원을 뽑아도 기초부터 다시 가르쳐야 합니다. 제가 여는 초밥 학교에선 국내외 어디서 가게를 열어도 망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만 졸업시킬 겁니다. 마지막으로는 시골에 가서 황토집을 짓고 다섯 자리가 있는 스시바를 만들고 싶어요. 저를 도와주신 분, 제가 좋아하는 분을 식사에 초대할 겁니다. 텃밭에서 키운 재료로 격식 없는 요리를 만들어 대접할 거예요."
안 조리장은 언제쯤 스스로 만족할 만한 초밥을 만들 수 있을까. 그는 "처음에는 열심히 뛰다 보면 언젠가는 결승 테이프를 끊고 커다란 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20년쯤 일했을 때 결승선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한테 죽음이 곧 결승선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