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민우(29)씨는 자가용으로 출퇴근한다. 출근길에 인천의 한 초등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을 지나야 한다. 그는 최근 그 학교 앞 스쿨존에 들어서면 차량 속도를 시속 10㎞ 정도로 낮춘다. 코로나 여파로 개학이 연기돼 학교 앞에 아이들이 없지만 그래도 불안하다고 한다. '민식이법'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안전운전, 방어운전 잘해도 일어날 수 있는 게 교통사고인데 이 법은 '운전자가 일단 잘못'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스쿨존 내 교통사고에 대한 운전자의 처벌을 대폭 강화한 '민식이법'이 지난달 25일 시행됐다. 법 시행 이후 '스쿨존 패닉(극심한 공포)'을 호소하는 운전자가 적지 않다. '민식이법'은 스쿨존 내 신호등과 단속 카메라 등 안전장치 설치를 의무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스쿨존에서 어린이 상해·사망사고를 낸 운전자를 가중 처벌하는 내용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으로 이뤄져 있다. 운전자들이 불안해하는 건 후자다. 사망 사고를 낸 경우, 운전자를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 운전자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운전자의 과실 여부와 관련 없이 가중 처벌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국회 입법 과정에서 개정안 원안에 없던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하여'라는 단서가 붙었다. 스쿨존 내에서 시속 30㎞ 이상으로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경우 등에 한해서만 가중 처벌된다.
그럼에도 운전자들은 '과실 0%'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민식이법' 처벌 규정이 과하다고 주장한다. 어린이가 갑자기 도로에 난입하는 등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주의 의무'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면 과실 유무에서 완전히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한 유튜브 채널에 이른바 '민식이법 1호 사고'라는 영상이 올라오면서 이 논란이 더 확산됐다. 영상을 보면 횡단보도로부터 약 30m 떨어진 지점에서 시속 30㎞ 미만으로 달리던 차량 앞으로 초등학생이 탄 자전거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도로를 가로질러 무단횡단하다 발생한 사고였다. 양쪽 인도 옆으로는 펜스가 세워져 있어 운전자가 예측하기 어려운 사고였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영상이 공유되며 "이런 사고도 민식이법으로 처벌받아야 하느냐"는 댓글이 쏟아졌다. 이 영상은 '민식이법 1호 사고'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지만, 경찰청은 지난 5일 "논란이 발생할 소지가 있는 사고는 경찰청이 직접 모니터링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찰청은 민식이법 적용과 관련한 논란을 줄이기 위해 전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스쿨존 관련 사고를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운전자들의 이런 불안감을 겨냥한 보험 상품도 나오고 있다. 주요 손해보험사들은 운전자보험 벌금 최대 보장 한도를 기존 최대 2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늘린 '민식이법 맞춤형 보험'을 내놓았다. A손해보험사는 "상품을 내놓은 뒤 작년 같은 기간보다 운전자보험이 2.5배 더 잘 팔리고 있다"고 전했다. B손해보험사도 "4월 들어 민식이법 전용 보험 상품의 가입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했다. 지난 3일 이 보험에 가입한 자영업자 조모(38)씨는 "보험료를 한 달에 1만원 정도 더 내지만 (민식이법) 최소 벌금이 500만원이니 안전하게 가입해뒀다"고 말했다.
'민식이법'을 두고 책임과 형벌 사이의 '비례성의 원칙'을 위반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사망사고에 대한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 징역'이 음주운전 사망 사고와 같은 수준의 형량이란 점을 두고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음주운전은 운전 시 타인에게 상해를 가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한 '범죄'이지만, 교통사고는 이와 달리 과실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책임이 없으면 처벌도 없다'는 형법상 '형벌책임주의'에 반해 우리나라 법체계에선 성립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허윤 변호사는 "최소한 판례 하나가 생길 때까지는 민식이법에 관한 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식이법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내 단속 카메라 설치 의무화 등을 담고 있는 '도로교통법'과, 스쿨존에서 안전운전 의무 부주의로 어린이 사망·상해 사고를 낸 가해자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2건을 지칭한다. 작년 9월 충남 아산의 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김민식(당시 9세)군 이름을 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지난달 25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사고 운전자가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지 않는 한 중형을 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