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 바다에 기름을 무단으로 버리고 울산으로 도주한 선박.

지난 9일 오전 8시 56분쯤 전남 여수 오천동 인근 해상을 떠다니는 검은 기름띠가 발견됐다. 이어 해경에 “기름이 유출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여수해경은 곧바로 방제선(防除船) 등 선박 5척을 동원해 긴급 방제작업에 나섰다. 방제용 유류 흡착재 425㎏ 등으로 6시간 만에 폐유를 완전히 제거했다. 유출된 폐유는 500ℓ가량이었다. 선박 기관실에서 프로펠러를 구동할 때 사용하는 원료인 ‘벙커C유’로 확인됐다.

어떤 배가 이 기름을 그냥 바다에 버리고 도주했는지 해경의 수사가 시작됐다. 선박 관제 자료와 유출유 확산 예측시스템을 통해 혐의 선박을 43척으로 추렸다. 당시 여수항을 오갔던 선박 중에서도 기름을 버릴 만한 선박을 가려낸 것이다.

이미 해경은 바다에 떠있는 폐유를 수거해 ‘기름 유지문(油指紋·Oil fingerprinting)’ 감식 장비를 돌려 ‘기름의 고유 지문’을 따냈다. 감식 2시간 만에 가능했다. 사람의 지문처럼 기름은 함유한 탄화수소 등을 분석하면 고유의 특성값이 다르게 나온다.

가령 A사의 벙커C유를 사용했더라도 선박마다 기관실 기계의 특성이 다르고, 그때마다 다른 기름을 섞어 사용하면서 고유의 기름 상태값이 나온다고 한다. 김지훈 여수해경 예방지도계장은 “시간이 흐르면 선박 내 기름의 특성이 또 바뀔 수 있어 촉각을 다투는 수사로 용의 선박을 잡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폐유를 바다에 버린 선박의 기관실에서 확보한 기름.

이에 따라 해경은 폐유와 용의 선박 43척의 기관실 기름의 성분이 서로 일치하는지 일일이 비교했다. 탐문과 항적 수사 끝에 지난 11일 울산항에 정박 중인 한국 국적 1600t급 화학운반선에서 ‘같은 지문의 기름’이 발견됐다. 해경은 이 선박의 1등 기관사 성모(54)씨를 해양환경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선장 이모(56)씨 등 승선원 13명 중 실제 기름을 해양에 버린 성씨만 처벌 대상이 된다.

1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성씨는 기름 필터링 역할을 하는 ‘유수 분리기’를 거치지 않고 기관실의 벙커C유를 여수 해상에 장시간 흘려보냈다. 해경은 “선박이 노후화해 유수분리기가 고장이 나 있었다”며 “사용하고 나오는 찌꺼기 기름이 조금씩 기계 틈새로 새 바다로 유출됐는지 알고도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철우 여수해경서장은 “바다에 기름을 유출한 선박은 해양경찰이 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검거한다”며 “해양에 고의 또는 과실로 기름을 배출하는 행위는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해양법에 따라 기름을 바다에 버리면 최대 징역 5년에 벌금 50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