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스타벅스를 꿈꿨던 ‘루이싱(瑞幸·Luckin)커피’의 매출 조작 사건으로 지금까지 높은 평가를 받았던 중국 스타트업에 대한 불신론이 불거지고 있다. 14억 내수시장을 무기로 빠르게 규모를 키울 수 있었던 중국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유망주’로 꼽혀왔지만, 직원을 수천명씩 고용한 기업으로 성장한 후에도 재무 상태가 위태로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중국 현지에서는 최근 4~5년간 지속된 스타트업 투자 과열 분위기를 과거 ‘닷컴 버블’에 비교하며, ‘넥스트(next·다음) 루이싱’ 기업들을 솎아 내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예견된 중국 유망주의 몰락
중국 벤처업계에서는 “루이싱커피의 몰락은 예상됐던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루이싱커피는 스타벅스 등 해외 유명 커피브랜드와의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제 살을 깎는 할인권을 남발하고, 약간의 비용을 추가하면 집 앞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예컨대 아침에 출근해서 앱으로 루이싱커피의 아메리카노(24위안)를 한 잔 주문하면서, 전날 받아 놓은 82% 할인권을 적용하면 단돈 4위안(약 688원)에 커피 한 잔을 살 수있다. 여기에 배송비(6위안)을 추가해도 10위안(약 1700원) 밖에 안든다. 커피 원가 조차 나오지 않는 금액을 받으면서, 투자금을 태워 배달 인력을 고용해서 사업을 확장시켰다는 뜻이다.
이 업체는 ‘스타벅스를 이겨버리자’는 슬로건을 들고 중국에 혜성처럼 등장한 업체다. 애국주의 마케팅과 과감한 할인 정책으로 지난 5개월간 오프라인 영업점은 400여개로 늘었고, 주문량은 300만건을 돌파했다. 이에 루이싱커피측이 “지난해 1~3분기 동안 매출 29억 2900위안(약 4989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혔을 때, 아무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나스닥에 상장한 뒤, 6개월만인 지난해 11월만 해도 주가는 136% 폭등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루이싱이 지난해 2~4분기에 허위로 작성한 매출 규모가 22억위안(약 3800억원)에 달하는 것이 밝혀졌다. 매출의 절반 이상이 ‘허구’란 뜻이다. 이 소식이 밝혀진 지난 2일 루이싱의 주가는 장중 최대 85% 폭락했고, 7일인 오늘도 주가가 전날 대비 18% 추가로 떨어지고 있다.
◇兆단위 적자…제2,3의 루이싱은 누구?
루이싱커피의 몰락으로 중국 투자계는 ‘패닉’에 빠졌다. 중국 시나닷컴은 “루이싱 사태가 ‘깜깜이 투자’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면서, 기존에 투자금을 태우는 방식으로 기업을 유지하던 유망 스타트업들이 위험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시나닷컴이 ‘넥스트 루이싱’으로 지적한 업체는 중국 3위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拼多多)’와 중국 전기차 제조 스타트업 ‘웨이라이(蔚來·NIO)’다. 두 업체 모두 루이싱커피처럼 수년째 투자금을 소모하면서 기업 덩치를 키웠고,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 미국 증시에 상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핀둬둬는 2015년 설립된 이후 3년만인 2018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알리바바과 징둥닷컴이 양분한 중국 온라인쇼핑몰 시장에 ‘모이면 할인’이라는 슬로건으로 나타난 핀둬둬는 처음부터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가 아닌 중국 3,4선 도시를 공략했다. 친구와 함께 ‘공동구매’를 할수록 가격을 할인해주는 정책으로 이용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호실적에 시가총액이 한때 2위 업체인 징둥닷컴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핀둬둬의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적자 규모는 85억 4000만 위안(약 1조 4600억원)에 달한다. 할인을 유지하기 위해 100억 위안의 보조금을 남발했고, 주 고객층이 중저가 소비자들에 집중돼 수익성 자체가 낮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핀둬둬의 매출은 301억 4000만 위안으로, 징둥닷컴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 전기차 업계의 ‘스타’인 웨이라이는 2014년 설립 후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적자 규모의 확대폭도 크다. 2016년엔 25억 7300만 위안(약 442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손실 규모가 112억 위안(약 1조 9264억원)으로 늘어났다. 텐센트·징둥닷컴·샤오미 등 중국 대기업의 거대 자본을 유치한 유망주였지만, 업계에서는 “자체 기술 개발의 속도도 느리고, 테슬라 모델3와의 경쟁에서 추가 투자금을 유치하긴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IT매체 36커를 비롯한 현지매체는 이 밖에도 동영상 업체 아이치이(1~3분기 순손실 78억위안), 뉴스 큐레이션 기업 취터우탸오(1~3분기 순손실 52억 1600만 위안) 등도 ‘위험군’에 속해있다고 지적했다. 시나닷컴은 “돈을 태우는 방식으로 성장한 이들 기업은 향후 추가 투자 유치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며 “결국 사업 모델 자체를 유지하지 못할 위기에 처해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