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담컨대 봉준호의 정점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1일 서울 성수동 작업실. 영화 평론가 이동진(52)의 말을 받아 적다가 증권가 애널리스트를 떠올렸다. 연일 상종가인 우량주 매수 의견을 듣는 듯했다. 칸과 아카데미 석권 이후에도 넘을 봉우리가 있는 걸까. 책 2만권, 영화 DVD 5000여 장, 음반 1만장에 둘러싸여 사는 그의 표정은 단호했다. "봉 감독은 아직 51세에 불과해요. 거장으로는 젊은 나이죠. 더구나 그의 작품엔 편차가 거의 없어요. 아카데미 작품상은 다시 못 받을 수도 있지만, 걸작을 쏟아낼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이동진은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평론가다. 그의 짧은 평 한 줄에 격론이 벌어지고 시장이 요동친다. 지난 2월 TV조선의 아카데미 생중계를 진행할 땐 "최소 3관왕"이라는 족집게 예측도 화제가 됐다. 각본상과 국제극영화상이 적중했고, 작품상·감독상으로 4관왕이 됐다.

이동진은 지난해 서울 성수동에 60평 규모 작업실을 마련했다. 책 2만여 권과 음반 1만장, 영화 DVD 5000여 장으로 가득한 공간에 ‘파이아키아’라는 이름도 붙였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에 머물면서 자신의 모험을 들려주던 섬 이름이에요. 제가 집 외에는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죠.”

그가 최근 '이동진이 말하는 봉준호의 세계'(위즈덤하우스)를 펴냈다. 2000년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부터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와 '기생충'까지 7편에 대한 평론과 대담을 묶은 '봉준호 감독론'이다. '기생충'은 영화 189장면(scene)에 대한 해설을 일일이 달았다. 이동진은 "한국 영화 100년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기생충'이란 점에서 사명감과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이동진은 소설가 한강과 방탄소년단(BTS), 봉준호에게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애초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영어로 작품 활동을 한 게 아닌데, 비슷한 시기에 모두 세계적 평가를 받았죠." 유튜브 등 미디어 환경의 급변으로 영어와 한국어라는 이분법이 퇴색하면서, 한국의 문화적 저력을 재평가받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봉준호가 '설국열차'나 '옥자'가 아니라 '기생충'으로 칸과 아카데미를 점령했다는 점도 주목했다. "'설국열차'는 대사가 영어 위주고, '옥자'는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넷플릭스 영화였죠. '기생충'은 한국어로 된 한국 영화란 점에서 문화적 의미가 큽니다."

영화 ‘기생충’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봉준호(왼쪽) 감독과 이동진.

이동진은 감독 인터뷰를 하면 전작(全作)을 순서대로 본 뒤 10시간씩 마주 앉아서 대화하는 지독한 성실성으로 유명하다. '끝장 토론'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봉테일'로 불리는 봉 감독도 "설명해주신 내용을 그대로 잘라서 붙이면 제 답변이 될 것 같아요"라고 했을 정도다.

그 편집증 덕에 봉준호 작품을 관통하는 특징뿐 아니라 개인적 습관까지 책에 담겼다. 봉준호 영화엔 침을 뱉거나 방뇨하는 버릇의 인물이 자주 등장하고, 문방구·매점·여관방 같은 좁은 공간이 즐겨 묘사된다. 다 큰 어른이 우스꽝스럽게 행동하고, 가장 어린 아이가 어른스럽게 행동한다. 매캐한 소독 연기를 뿌리거나 자동차 사이드미러를 걷어차는 장면, 좁은 골목의 추격 신도 빼놓지 않는다.

죽음이 일어나는 공간은 주로 지하실과 1층이다. 시각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평보다는 수직 방향에 집중한다. 이동진은 "봉준호는 초기작부터 긴밀한 상호 연관을 지녔다는 점에서 거대한 '영화적 세계'를 이룬다"고 했다. 책에는 "한번 화내면 두고두고 곱씹고 후회하기 때문에 부부 싸움도 거의 안 해요"라는 봉 감독 고백도 실려 있다. "뭔가 쪼잔한 것" 같아서 '봉테일'이란 별명도 싫어한단다.

이동진의 14번째 단행본. 그의 수집벽을 주제로 올해 또 한 권을 출간하고, 2~3권은 구상 중이라고 했다. 봉준호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