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기 에스엔에이치 연구소장·공학박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감염병은 많은 숙제를 주고 있다. 대비할 수 없었는지, 무엇을 해야 했는지, 당분간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 같다. 앞날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기에 감염병을 둘러싼 논쟁은 꽤 오랜 역사가 있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가 천연두 예방접종을 소개한 이후 ‘베르누이 정리’의 베르누이와 ‘백과전서’의 달랑베르가 대립했다. 당대 최고의 수학자였던 두 사람은 확률과 예측, 그리고 인간의 선택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졌고, 그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비로소 인류는 감염병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수학자 논쟁에서 감염병 돌파구 마련

1757년 프랑스에서 재정 적자 해결책으로 제안된 복권을 둘러싸고 공청회가 열린다. 제안자는 애정 행각으로 유명한 카사노바였고, 회의적인 수학자 달랑베르가 심사를 맡았다. 순서를 정할 때 동전을 던지는 이유는 앞면과 뒷면의 확률이 반반으로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권은 누가 봐도 판매자가 유리한 게임이라 사람들은 복권 구매를 꺼렸고, 복권 사업은 실패가 많았다. 고심 끝에 프랑스는 채권에 복권을 끼워 팔았다가 결합 상품의 허점을 파고든 볼테르 때문에 엄청난 손실을 기록하고 볼테르는 유럽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프랑스가 카사노바의 제안에 주저하며 공청회를 연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한편, 의대 교수였던 베르누이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동전의 앞면이 연속으로 나올수록 상금이 두 배씩 증가하는 게임을 고안한다. 게임의 기댓값은 무한대지만 사람들은 게임 참가를 주저했기에 이를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설'이라고 한다. 이 역설을 통해 베르누이는 사람들이 객관적인 기댓값이 아니라 주관적인 만족도로 선택한다는 것을 보이고자 했다. 같은 상금이라도 부자들은 덜 만족하지만, 같은 참가비라면 부자들은 덜 부담된다. 나중에 경제학에서 '효용(utility)'이라 불리는 이 놀라운 개념에서 그는 공정한 참가비를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베르누이가 개인의 선택을 수학에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합리적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반면 달랑베르는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보았다. 동전 앞면이 계속해서 나오면 사람들은 뒷면이 나올 확률이 커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학적으로 확률은 여전히 50%다. 이처럼 사람들의 인식과 수학은 다르므로 달랑베르는 베르누이에게 동의할 수 없었다.

이 무렵 달랑베르는 베르누이 정리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었다. 누구나 바람의 저항을 느끼지만, 베르누이 정리에서는 공기의 저항이 없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것이 물리학에서 유명한 '달랑베르 역설'이다. 따라서 날개 아래쪽은 느리고 위쪽은 빠르다며 베르누이 정리에 의한 압력 차이로 비행기가 뜬다는 설명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공기 중에서 움직이는 물체에 베르누이 정리를 적용하면 어떠한 힘도 발생하지 않고, 따라서 날개가 뜨는 힘도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달랑베르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설에서 수학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점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사망과 접종 위험, 확률 수학으로 풀어

다시 카사노바의 복권 공청회로 돌아가자. 복권이 한 장만 팔렸는데 1등이 나오면 어떡하느냐는 질문에 카사노바는 오히려 대성공이라고 답한다. 초반에 1등이 터질수록 다음 회에 더 많은 사람이 복권에 몰려든다고 하자, 순간 달랑베르가 무릎을 치며 카사노바를 지지한다. 포탄이 한 번 떨어졌던 곳에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인간은 로또가 터진 편의점에 로또를 기대하고 줄을 선다. 카사노바는 이처럼 모순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을 전제로 복권을 설계한 것이고 늘 인간의 합리성에 의문을 품고 있던 달랑베르가 즉시 알아본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프랑스 복권 사업은 대성공을 거두며 달랑베르는 인간의 선택이 합리적인 계산보다는 경험과 본능에 의존한다는 확신을 굳힌다. 볼테르가 던진 예방접종 이슈의 파장은 상당했다. 사망 위험 1위가 천연두였지만, 예방접종으로 인한 위험도 무시할 수 없기에 정부의 선택은 어려웠다. 1766년 의사 베르누이는 두 위험을 확률 수학으로 풀어 예방접종으로 평균수명은 늘어난다고 예측한다. 이것이 최초의 감염병 역학 이론으로, 처음으로 방역 차원에서 예방접종의 정당성이 확보된다. 달랑베르는 베르누이가 주장한 예방접종 방역에 찬성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사람들이 기피할 것이라며 대안을 촉구했다. 전체 이익을 위해 예방접종으로 인한 희생을 감수하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사람들은 실현되지 않은 수명 연장을 선택하기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예방접종의 위험부터 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달랑베르의 주장에 주목한 사람은 경제학자 케인스였다. 그는 경제학의 기본 전제였던 합리적 개인보다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 현실적이라고 봤다. 예상치 못한 일은 예측할 수 없었기에 위험한 것이고, 위험에 닥친 사람들의 불안은 합리적인 정책도 무력화한다. 따라서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예측보다 예방이 과학적인 선택이고, 섣부른 예측보다 위험을 최소화할 때 과학이 힘을 발휘한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감염병에 대비해야 한다는 베르누이의 예방접종 이론에 달랑베르의 인간에 대한 성찰이 더해져, 이후 과학자들은 예방접종의 위험을 줄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1796년 의사 제너는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백신으로 사람들의 불안과 논란을 잠재웠으며, 사상 처음으로 국가적인 방역 시스템이 구축되었고, 천연두는 인류가 박멸한 최초의 감염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