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초창기 활명수 병. ②1936년 8월 11일 동화약품이 조선일보에 게재한 베를린올림픽 우승 축하 광고. '건강한 체력의 근원은 오직 건전한 위장에서 배태된다. 건강한 조선을 목표하고 다 같이 위장을 건전케 하기 위해 활명수를 복용합시다'라고 적혀 있다. ③동화약품 활명수 브랜드의 대표 제품 '까스활명수 큐'.

올해로 출시 123주년을 맞은 동화약품 활명수(活命水)는 국내 최초의 신약이자 최장수 의약품이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이름 그대로 조선 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장 오래 사랑받은 소화제이자 국민 건강에 기여한 의약품으로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최초 신약 '활명수'

동화약품은 1897년 국내 최초 전문 제약 회사로 창립했다. 같은 해 동화약품이 출시한 활명수는 이제 국내 최장수 의약품이 됐다. 둘 다 한국기네스북에 기록으로 올라 있다. 국내 제약 산업의 시작은 동화약품 활명수의 개발과 궤적을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최초 양약인 활명수를 개발한 이는 궁중 선전관 민병호였다. 이후 그는 아들 민강과 함께 활명수의 대중화를 위해 동화약방(지금의 동화약품)을 창업했다. 당시 민중들이 급체와 토사곽란 등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았는데, 당시 활명수는 이름처럼 '생명을 살리는 물'이자 만병통치약 대접을 받으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고 한다.

서슬 시퍼런 일제 강점기, 동화약방은 이렇게 모은 자금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9년 3.1 운동 직후 체계적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국내 간 비밀연락망인 '서울연통부'를 운영한 것이다. 동화약방의 초대 사장이었던 은포 민강은 당시 국내외 연락을 담당하고 정보를 수집했으며, 활명수 판 돈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행정책임자였다. 당시 활명수 한 병 값은 50전으로 설렁탕 두 그릇에 막걸리 한 말을 살 수 있는 가격이었는데,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으로 이동할 때 활명수를 지참해 현지에서 비싸게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고 한다. 현재 서울 순화동 동화약품 창업지(중구 서소문로9길 14)에는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서울시에 의해 '서울연통부 기념비'가 세워져 서울연통부의 활약상과 설립 의의를 재조명하고 있다.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동화약품 사장들. (왼쪽부터)동화약품 초대 사장 은포 민강, 5대 보당 윤창식 사장, 7대 윤광열 사장.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서울시가 동화약품 창업지(중구 서소문로9길 14) 앞에 세운 서울연통부 기념비.

민강을 비롯해 동화약품 역대 사장 중에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 적지 않다. 5대 보당 윤창식 사장은 동화약방을 인수한 후 경제적 자립으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조선산직장려계'를 결성해 총무로 활동했고, 빈민을 돕는 '보린회'와 좌우 합작 독립운동기관인 '신간회'도 적극 지원하는 등 다양한 민족 운동을 펼쳤다. 7대 윤광열 사장은 보성전문학교(지금의 고려대) 재학 시절, 일제에 강제 징집됐다가 광복군에 합류해 중대장으로 활동했다.

동화약품은 1936년 8월 9일 독일 베를린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손기정, 남승룡 선수가 마라톤 부문 금메달과 동메달을 각각 획득하자 승전보를 알리는 축하 광고를 조선일보에 싣기도 했다. 당시 광고에서 조선 청년의 의기충천(意氣衝天)을 알리고 '건강한 조선을 목표로 하자'는 메시지를 담아 암울한 시대를 견디는 국민의 상처를 위로하고 자부심을 북돋았다.

◇액제소화제 시장 점유율 70%…세대를 아우르는 국민 소화제

활명수 발매 122주년 기념 에디션. 활명수는 매년 특별한 디자인의 '활명수 기념판'을 선보인다.

"좋은 약이 아니면 만들지 마라. 온 식구가 정성을 다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기업으로 이끌어라."

인류 건강을 위해 헌신하고 발전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5대 사장 보당 윤창식의 경영 철학은 동화약품의 기업 문화로 이어져 활명수가 국민 소화제로 오래도록 사랑받는 배경이 됐다. 활명수 브랜드는 액제소화제 시장에서 매출 1위, 70% 이상의 압도적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판매된 활명수는 86억 병에 달하며, 한 줄로 세우면 지구를 25바퀴 돌고 세계 인구 77억 명이 한 병씩 마시고도 남는 분량이다. 소비자들의 꾸준한 사랑에 힘입어 활명수 브랜드는 2019년 총 매출 615억원을 달성했다. 현재 동화약품은 일반의약품인 활명수·까스활명수 큐·미인활명수·꼬마활명수와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까스활(活)·미인활(活)으로 구성된 총 6가지 제품을 생산한다.

활명수가 대한민국 판매량 1위 액제소화제 브랜드로 꾸준히 사랑받아온 비결은 뭘까. 부작용이 거의 없고 복용하기 편하며 높은 효능을 지녔다는 점을 지난 123년간 전 국민으로부터 검증받은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점유율 1위에 만족하지 않고 시대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까스활명수'는 1967년 기존 활명수에 탄산을 첨가한 제품으로 청량감을 보강해 소비자에게 호평을 받았다. 1991년에는 브랜드 리뉴얼을 추진해 '까스활명수 큐'를 발매했으며 2015년에는 오매(매실을 훈증한 생약성분)를 함유한 '미인활명수'를 출시했다. '꼬마활명수'는 만 5~7세를 위한 어린이 전용 소화정장제로, 스틱형 파우치 포장과 어린이 보호용 안전 포장이 적용된 제품이다. 2012년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의약외품 '까스활(活)'이 나왔고, 2017년 아사이베리 과즙으로 상큼한 맛을 더한 '미인활(活)'을 선보였다.

현재 동화약품에서 판매하는 6종(種) 활명수 브랜드 제품. (왼쪽부터)일반의약품인 활명수·까스활명수 큐·미인활명수·꼬마활명수,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의약외품 까스활(活)·미인활(活)로 구성돼 있다.

◇물 부족 국가 어린이 살리는 물

이제 활명수는 전 세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생명을 살리는 물'로 거듭나고 있다. 활명수는 매년 독특한 디자인을 담은 아트 콜라보레이션 '활명수 기념판'을 선보이며, 기념판의 판매수익금을 물 부족 국가의 식수 정화, 우물 설치, 위생 교육 등을 지원하는 사회공헌 활동에 사용한다. 동화약품은 그동안 활명수 기념판 판매수익금을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했으며, 지난해 에코패션 브랜드 플리츠마마와 함께 선보인 122주년 기념판의 판매수익금도 기부할 계획이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좋은 약을 만들어 인류에 봉사하고 그 효험을 통한 정당한 대가로 경영한다는 기업 철학을 철저히 지켜나가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