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후배 의사가 위암에 걸렸다. 위암 3기로 당장 수술이 불가능했다. 몇 차례 항암 치료 후 암덩이 크기가 줄면 그때 수술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의사들로만 구성된 단톡방도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이후 시시각각 투병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격려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부디 털고 일어나길….
경험상 암은 지뢰 터지듯 발병한다. 멀쩡해 보이는데 터진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 후배의 얼굴이 만날 때마다 야위어 갔다.
몇 년간 속이 쓰리고 소화도 안 됐는데 제산제만 먹었다. 그게 암 때문일 거라곤 전혀 생각을 안 했다. 내시경도 검진도 안 받았다. 발병을 막기는 어렵다고 해도 검진을 안 받은 것이 실수였다. 미루다 미루다 세월을 흘려보냈다.
검진을 미루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당장 어디가 아파서 받는 것이 아니라서 차일피일하다 때를 놓친다. 일이 많은 직장인 또는 자영업자들이 검진을 잘 안받는 듯하다. 검진 때문에 자리를 비우면 주위 동료들한테 눈치도 보이고 또 본인이 사장인 자영업자는 당장의 매출 손실이 걱정돼서도 그렇다. 그럴 때일수록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대기업의 회사 주치의를 할 때 일이다. 모 임원의 비서로부터 전화가 다급하게 걸려왔는데 그 임원이 사무실에서 쓰러졌다고 했다. 가보니 당뇨로 인한 저혈당 쇼크였다. 응급조치 후 회사 내 119에 태워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보냈다.
의무실로 돌아와 그 임원에 대한 건강기록을 살피는데 최근 몇 년간 검진기록이 없었다. 본인이 당뇨병인 게 알려질 경우 승진이나 연임에 지장을 받을까 봐 아예 검진을 안 받았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다 잃는데도 말이다.
심리적 이유도 있다. "별일 있겠어" "나는 그런거 안 걸려" 일종의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이다. 담뱃갑에 붙은 끔찍한 암 덩어리 사진을 보면서도 무심히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의 심리와 같다. 또 "검진받고 암이 나오면 어떡해!"라며 끔찍한 상황을 마주치기 꺼리는 심리도 있다. 당사자한테는 그럴듯하나 객관적으론 비합리적이다. 암세포는 무정해서 주인의 사정 같은 건 봐주질 않는다. 게다가 암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