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살인범이란 표현을 만들어낸 1970년대 살인마 테드 번디의 마지막 식사. 미국 교도소에는 사형수가 사형 집행 전 원하는 음식을 주문받아 만들어주는 전통이 있다. 재료비는 40달러이고, 인근 지역에서 식재료를 구할 수 있어야 하고, 교도소에서 조리할 수 있어야 한다. 번디는 선택하기를 거절했고, 교도소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를 제공받았다. 전통적 마지막 식사에는 미디엄레어로 구운 스테이크와 달걀 프라이, 해시브라운, 토스트, 버터, 잼, 우유, 주스가 제공된다. 사진작가 헨리 하그리브스가 촬영해 자신의 사진집 '사형수, 최후의 만찬'에 실었다.

참마를 한 박스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맛도 있고, 식감도 좋고, 먹기도 간편하고, 몸에도 좋고, 색깔도 이쁘고, 단점이 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참마를 말이다. 그런데 생각만 하고 있다. 그렇게나 좋아하는 참마인데,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돼버릴까 봐 그렇다. 하지만 또 주문하지 않기에는 여러 가지로 유혹적이라서 갈등이 된다. 그래서 주문해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참마죽'에는 나와 같은 딜레마를 가진 사람이 나온다. 몇 번 먹어보지 않은 참마죽을 실컷 먹는 게 소원이었던 한 남자가 참마죽을 제대로 먹게 해주겠다며 누군가가 베풀어준 '참마죽 폭격'에 좌절하고 만다는 이야기다. 참마죽을 질리도록 먹고 싶다는 소원을 홀로 소중하게 지켜왔던 남자는, 그래서 그동안 행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남자를 생각하면, 도저히 참마 한 박스를 주문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 출판된 책 중에 '사형수, 최후의 만찬'이라는 책이 있다. 한국에는 번역이 안 되어 있고, 이건 일본에서 출간된 제목이다. 원제는 'Last Suppers'. 제목에서 느낄 수 있다시피 사형수가 먹은 마지막 식사에 대한 책이다. 미국 교도소에는 사형수가 사형을 당하기 전에 원하는 음식을 제공해주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단, 원하는 것 모두를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예산은 40달러이고, 인근 지역에서 식재료를 구할 수 있어야 하고, 교도소에서 조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알코올도 금지다. 아마도 평생을 먹어 왔고, 그럼에도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참마죽 폭격' 이전의 '참마죽' 같은 음식을 말이다.

뉴질랜드에 사는 푸드 포토그래퍼 헨리 하그리브스도 사형수들의 마지막 식사에 대한 사진을 찍었다. '사형수, 최후의 만찬'과 관련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텍사스주에서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 전통을 없애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관심이 생긴 그가 진행한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프로젝트 이름은 '시간이 없다(No seconds)'. 나는 '사형수, 최후의 만찬'이라는 책에 대해 검색하다가 그 사진들에 닿게 되었다.

사형수의 이름과 나이, 지역, 죄목들, 사형 방식과 그가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의 세부와 사진이 있었다. '스테판 앤더슨 / 49세 / 캘리포니아 / 절도, 폭행, 탈옥, 일곱 차례 살인 / 치사 주사'와 '구운 치즈 샌드위치 2개, 코티지치즈, 옥수수와 곡물 혼합 죽, 복숭아 파이, 초콜릿 칩 아이스크림, 래디시'가 같이 있는 식이다. 특정한 음식과 함께 특정한 영화를 보기를 요구한 사람도 있었다. 그가 마지막 음식과 함께 마지막으로 보길 원했던 영화는 '반지의 제왕'. 2파인트의 민트 초콜릿 칩 아이스크림만을 원한 사람도 있었고, 아무것도 먹지 않기를 원한 사람도 있었고, KFC의 '오리지널 레시피 버킷'이라는 특정한 시판 제품을 지목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선택하기를 거절한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 만찬'을 선택할 권리를 거부하고 교도소에서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를 한 것. 전통적 마지막 식사에는 스테이크, 달걀 프라이, 해시브라운, 토스트, 우유, 주스가 제공된다. 가장 이색적이었던 것은 올리브 한 알을 원한 사람이다. 납치와 살인으로 사형수가 된 그 남자는 씨가 들어 있는 올리브여야 한다고 요청했다. 왜냐하면 자기 몸 안에서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나무가 자라길 원해서였다고.

2019년에 출간된 만화책 '자, 이제 마지막 식사가 남았습니다'에도 최후의 식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만화가 오카야 이즈미가 작가(주로 소설가)들을 만나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해 묻고, 그 음식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들을 만화로 그린 것이다. 2017년 일본의 분게이슌주(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을 주관하는 출판사)에서 나온 것을 번역한 것인데,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이 없었다면 과연 이 책이 나올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작가들은 동일본대지진 당시의 기억과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죽고 싶지 않다' '장수하고 싶다'며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을 계속 먹으면 죽음을 미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만화가는 이렇게 말한다. "호화로운 음식은 괜히 더 죽음을 부각하는 것 같고, 너무 소박한 걸 먹어서 허기진 상태로 죽기도 싫어… 평범한 음식이 좋을 것 같지만, 그건 뭔가 시시하고…."

두부, 냄비우동, 돈가스, 스키야키, 흰쌀밥, 오징어순대, 스파게티…가 그에 대한 작가들의 답이다.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누가 미식가인 줄도 알겠고, 누가 말을 잘하는지도 알겠고, 누가 더 풍요로운 경험을 누리고 사는 줄도 알겠는데 역시 흥미로운 사람은 따로 있었다. 뻔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인육을 먹고 싶다'고 말하는 무라타 사야카가 그랬다. 합법적인 인육이라고 했다. 식인 풍습이 있는 부족한테 나누어 달라고 하겠다고. 차례로 죽어 온갖 곳에 굴러다닐 생명체와 동물 사체를 먹고 싶다는 무라타 사야카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책 '편의점 인간'이 몹시 궁금해졌던 것이다. '복어는 맛이 없다'고 주장하며 파스타 체인점에서 파는 파스타를 먹고 싶다는 아사이 료에게도 흥미가 생겼다. 그는 또 주장하는 것이다. 그 파스타 집의 카피를 이렇게 바꿔야 한다고. "맛알못들에게 가장 맛있는 음식?!" 아사이 료는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의 작가다. 또 비석에 새기고 싶은 말을 '포기하다'라고 말한 야마자키 나오코도. 영정사진도 찍고 싶지 않고, 장례식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보면서 그의 책을 검색했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

'자, 이제 마지막 식사가 남았습니다'에는 '사생관(死生觀)'이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왜 '생사관'이라고 하지 않고 '사생관'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빌려야 삶에 대해 제대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할수록 삶이 '찐'해지는 이 기분이 무엇일지요?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한동안 나의 질문은 이게 될 것 같다. 마지막 식사로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