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생이니 올해로 일흔이다. 매사에 활동적이라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산에 오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조심하게 되었다. 몇 년 전 산에서 미끄러지며 손목뼈를 다친 바람에 철심을 끼고 1년 이상 고생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근래에는 가벼운 산행을 즐긴다. 악산이 아니라 흙 많은 흙산을 오른다. 적당히 낙엽이 깔려 폭신하거나 사람들이 밟아 다져진 길이면 더 좋다. 큰딸은 쉬는 날이면 산행에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지난 연말부터 시작해 새해 첫날까지 대모산과 서울 둘레길을 하루 3~5시간 걸었다. 둘레길은 산 정상에 서려고 달리다시피 오르는 등산도 아니요, 위풍당당 힘차게 걷는 산행도 아니다. 그저 이런저런 삶에 얽힌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사부작사부작 걷는 길이다.

나는 '사부작사부작'이란 말을 좋아한다. 너무 요란하지 않으면서 그 말 속에 깃든 의미가 좋다. 사부작사부작 걸으며 주위에 핀 야생화를 보고,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을 듣는다. 사부작사부작 걸으며 귓불을 간지럽히는 바람을 느끼고, 계곡 따라 흐르는 감미로운 물소리를 즐긴다. 그러다 보면 시나브로 목적지에 도달하니 힘든지도 모르고 걷게 된다.

옛날 나의 어머니는 늘 사부작사부작 움직이셨고, 그 손에서 세상 가장 맛있는 음식들이 태어났다. 옻의 어린 순을 삶아서 초간장에 찍어 주셨고, 봄이 되면 대나무로 둘러싸인 우리 집 뒤꼍에서 부드러운 죽순을 꺾어 데친 뒤 초무침으로 해주거나 볶아주셨다. 어릴 적 추억의 음식을 해먹고 싶어도 그런 식자재는 서울엔 흔하지 않으니 아쉬울 뿐이다. 우리말 '사부작사부작'은 그래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