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 10부제' 실시로 2주일에 한 번씩 연차 소진해야
18개 부처 中 고용부 유일…대부분 '재택근무'
직원들 "사실상 강제 휴가…정작 여름 휴가 못갈까 걱정"
고용부 "공무원은 근로기준법 적용 안 돼"

고용노동부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지 대책으로 소속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연가(연차휴가)10부제’를 실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우한 코로나 사태에 따른 민간 사업장의 연가 사용 강제는 ‘위법’이라는 입장을 밝혀온 고용부가 정작 소속 공무원들에게는 사실상 연가를 강제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6일부터 연가10부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연가10부제는 평일 기준 2주간 0부터 9까지 숫자를 부여해, 출생연도 끝자리가 일치하는 사람이 그 날짜에 연가를 쓰도록 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1981·1991년생은 첫째 주 월요일, 1977·1987년생은 둘째 주 화요일에 연가를 써야 하는 식이다. 사실상 고용부 소속 전 직원이 격주에 하루씩은 연가를 소진해야 하는 것이다.

고용부의 이번 결정은 지난 12일 우한 코로나 확산 차단을 위해 인사혁신처에서 발표한 ‘공무원 대상 유연근무 이행 지침’에 따른 조치다. 인사혁신처는 재택근무 권고 등 내용이 담긴 이 지침을 참고해 그대로 이행하거나, 각 부처 상황에 맞게 기관장이 자체 지침을 마련해 시행하도록 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18개 중앙행정부처를 취재한 결과, 연가10부제처럼 연가를 사실상 강제로 소진하도록 한 곳은 고용부가 유일했다. 대부분의 부처들은 근무 인원 비율만 다를 뿐, ‘재택근무’ 방식을 취했다.

고용부 내부에선 연가10부제가 사실상 연가 ‘강제’ 제도와 같다는 비판이 나왔다. 고용부 소속 공무원 A씨는 "지침이 내려온 이후로 과별로 연가 신청 날짜를 취합하고 있다"면서 "따르지 않으면 눈치가 보여서 연가를 원하지 않아도 의무적으로 써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공무원 B씨는 "코로나 사태가 언제까지 장기화할지 모르는데 연차가 낮은 공무원일수록 연가를 조기 소진할 확률이 높아 여름 휴가도 가지 못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고용부가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가 강제는 ‘휴가권 침해’인 만큼 이는 근로기준법 위법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제60조 5항에 따르면 연가는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주어져야 한다. 지난 5일에도 고용부는 공식 블로그에 "‘코로나로 인한 연차 강제는 위법"이라며 "연차 휴가는 강제로 사용하게 할 수 없고,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주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고용부는 이같은 지침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연가10부제는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 공무원 대상이니까 위법이 아니다"라면서 "연가10부제는 강제안이 아닌, 권고안일 뿐이어서 과별로 자율 적용도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5일 공식 블로그에 올린 카드 뉴스 일부분.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연차 휴가 사용을 강요하면 어쩌죠?’라는 질문에 ‘연차 휴가는 강제로 사용케 할 수 없고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줘야 한다’는 답변이 담겨 있다.

고용부는 또 "고용부 직원의 평균 연가 사용 일수가 11.2일인데, 전체 중앙 부처 평균인 12.9일보다도 낮은 편"이라면서 "오히려 코로나 사태 때문에 공무원들이 연가를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할까 봐 내린 조치로 이해해달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무사는 "코로나 사태로 중소기업에선 울며 겨자 먹기로 연가를 쓰게 하는 사례가 쏟아지는 상황인데, 담당 부처조차 무시하는 근로 정책을 민간 기업이나 사업자들이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비상시국이라는 점은 알겠지만, 재택근무 등 다른 방안이 있는데 모범을 보여야 할 고용부에서 연가를 강제하는 10부제를 시행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