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윤 스포츠부 기자

정의당의 비례대표 공천에 청년들이 잔뜩 화가 났다. 게임을 즐기는 청년일수록 더 그렇다.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1번을 꿰찬 류호정(28)씨 때문이다. 젊은 층이 많이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그의 과거를 비판하는 글들이 수백개씩 추천을 받고 있고, 류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도 격한 비판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류씨는 온라인 게임 롤(LoL·리그 오브 레전드)의 'BJ(인터넷 방송 진행자)' 출신이다. 이 게임은 작년 말 세계대회 결승 때 최고 동시 시청자 수가 4400만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여성 BJ는 종종 '여캠'이란 비하적 표현으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여성은 게임계에서 오랫동안 남성에 기대는 얼굴마담에 머물렀다. 이화여대 e스포츠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린 류씨는 이 같은 차별을 깨려 했고 노동운동에 힘썼다는 평을 들었고, 이젠 국회의원 자리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그 명성엔 치명적 결함이 있다. 그는 2014년 '대리 게임'으로 등급을 올렸다가 적발된 적이 있다. 여성 게이머로 유명세를 얻던 시절, 남자 친구 등에게 자신의 아이디를 빌려줘 실제 실력보다 높은 등급을 달성했다. 심지어 류씨는 이 논란이 불거지기 몇 달 전 게임 전문 매체 인터뷰에서 "남학생에게 '여학생이 게임을 못한다'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여성이 (등급에 비해) 조금만 못해도 '대리 게임을 했다'고 단정 짓는 것 같다"고도 했다. 거짓과 위선의 연속이었다.

그는 당시 이 사실을 들키자 사과문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며 "즉시 동아리 회장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게이머 대다수는 진정성을 느끼지 못했다. 사과문을 올리고 두 달 뒤 동아리 회장이라며 한 매체와 인터뷰를 했고, 그 뒤에도 자신의 높은 게임 등급을 이력서에 적어가며 게임 회사에 취업하고 인터넷 방송을 하는 등 게임계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지난 13일 "잘못된 판단으로 실력에 맞지 않는 등급을 갖게 된 지난날이 부끄러워 연습했고 이후 높은 등급을 획득했다"며 "이력서에 적은 등급은 실제 내 등급"이라고 해명했다.

정의당은 15일 전국위원회를 열어 류씨를 재신임하기로 했고, 류씨는 16일 "비례대표 1번으로서 소임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류씨의 공천 결정은 젊은 층의 분노에 오히려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게이머들은 연일 "게임 관련 스펙으로 비례 1번을 달았는데, 다름 아닌 그 게임으로 대중을 기만했다" "'그래도 국회의원은 해야겠다'는 것이냐"며 분노를 가라앉히지 않고 있다.

청년들이 군소 정당의 한 정치 신인에게 유독 분개하는 건, 현실 세계를 넘어서 이제 컴퓨터 속에서조차 불공정한 사회란 걸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부정을 저질렀던 이가 제대로 된 반성 없이 높은 자리에 오르고, 그를 추종하는 세력은 온갖 논리를 동원해 그를 감싼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