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국희 사회부 기자

2014년 세월호 사고 직후 김진태 검찰총장은 '돼지머리 수사'를 언급했다고 한다. 고사상에 돼지머리를 올리듯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돼지머리는 세월호 선사의 실소유주로 지목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었다.

검찰은 '유병언 검거 작전'에 검사 15명, 특별수사팀 수사관 110명을 투입했다. 사상 최고인 현상금 5억원도 걸었다. 경찰도 연인원 145만명을 동원했다. 밀항을 막기 위해 해경 2100여 명, 함정 60여 척도 대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못 잡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질타했지만 유 전 회장은 변사체로 발견됐다. 국민 비난은 가라앉지 않았고, 돼지머리 수사는 유 전 회장 아들·딸에게 이어졌다. 유 전 회장 장남을 검거한 경찰이 그가 구원파 여신도와 머물던 오피스텔에서 정액을 채취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는 보도도 나왔다.

유 전 회장을 세월호 사고 배후로 몰기 위해 횡령과 배임, 조세 포탈 혐의를 들고 나온 건 애초 별건 수사였다. 구원파 측이 "자기들(정부) 책임은 덮어놓고 모두 유 회장과 구원파 책임으로만 몰아가고 있다"고 한 게 틀리는 말은 아니었다. '세월호 변호사' 타이틀로 국회에 들어간 민주당 박주민 의원조차 "유병언을 잡는다 해도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이 밝혀지는 것은 별개 일"이라고 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도 박근혜 대통령이 유병언 수사 지시로 검찰에 지침을 내려보냈고, 검찰이 여론몰이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진보 언론들은 "관피아의 규제 완화, 해경 구조 실패와 지휘 체계 부실 등 문제가 드러났지만 이단 종교 교주 개인 문제로 프레임을 전환했다"며 '유병언 뒤에 숨어서 웃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6년 전 상황은 현재 우한 코로나 감염증 사태를 맞은 문재인 정권 모습과도 그대로 겹쳐진다. 역설적인 것은 검찰 힘 빼기와 검찰권 절제를 부르짖던 현 정권 인사들이 신천지 이만희 교주에 대한 돼지머리 수사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주문하고 있다는 점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이례적으로 신천지 압수 수색을 검찰에 공개 지시했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만희 교주를 체포하라며 살인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제2 유병언' 만들기에 나선 이들에게 바이러스에 감염된 신천지 신도들은 그저 총선 승리를 위한 정치적 희생양으로만 보이는 것일까.

총선을 한 달 남긴 시점에 문재인 정권은 정치적 본능으로 최악의 방역 실패 책임을 신천지에 떠넘기고 싶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도 유병언만 잡으면 세월호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이라 착각하다 국민을 우습게 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세월호 문제는 임기 내내 정권의 발목을 잡다 탄핵의 단초가 됐다. '이만희 뒤에 숨어서 웃는 사람들'만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