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따라 줄 간격 고를 수 있는 '㎜ 노트'
스마트폰으로 침몰한 문구 혁신
대학·학원가 입소문 타며 히트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 들며 한국 경제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CEO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솔직한 속내를 들을 수 있게 취중진담 형식으로 인터뷰했습니다.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 미래를 함께 탐색해 보시죠.
스마트폰 때문에 노트와 펜 등 문구류 쓸 일이 거의 사라졌다. 관련 업체들은 고사 직전이다. 하지만 이런 여건에서도 독특한 아이디어로 소비자를 끌어모으는 혁신가는 있기 마련이다. ‘최첨단’ 심플 디자인으로 문구업계에 활기를 넣고 있는 ‘자연과사람’ 신상봉 대표를 만났다.
◇단순한 디자인과 실용성으로 승부
자연과사람의 대표 상품은 ‘㎜ 노트’다. 줄 간격을 5㎜ 6㎜ 7㎜ 8㎜ 9㎜ 등으로 다양화해 소비자가 자기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게 했다. "어떤 분은 글씨가 작고, 또 어떤 분은 큽니다. 하지만 노트 줄 간격은 천편일률적이죠. 취향 별로 필기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줄 간격을 다양화했습니다.
디자인은 심플 그 자체다. 표지 디자인을 내지와 같은 줄 노트로 하면서, 몇mm짜리 노트인지만 표시했다. 포장지를 뜯지 않아도 어떤 노트인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애플이나 현대카드 디자인을 연상시킨다. 어떻게 보면 더 단순하다. 노트 내지는 물론 표지에도 ‘자연과사람’ 로고 하나 쓰지 않았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지 않는 건 모두 없애야 오래 써도 질리지 않습니다. 저희 철학은 ‘단순함’이에요. 로고를 뺀 이유도 소비자에게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단순한 제품인데 의외로 세상 처음 나왔다. 다양한 줄 간격을 콘셉트로 한 제품이 기존에 없었던 것이다. 제품을 내놓는 게 쉽지 않았다. "실패할거란 반대가 많았어요. 줄 간격 차이 하나로 소비자들이 대기업 대신 우리 노트에 관심을 가져주겠느냐는 거죠. 괜히 개발비만 쓸거란 지적이 많았습니다. 공장에서는 줄 간격 1㎜ 별로 여러 종의 노트를 만들어야 하니 헷갈려서 불편하다는 불만이 컸습니다. 하지만 저는 잘될 거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설득하고 또 설득했습니다."
신 대표 예측이 맞았다. 작년 4월 출시하자마자 대학교와 온라인몰(http://bit.ly/2vSuFZz)을 중심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큰 히트를 치자 비슷하단 논란이 있는 제품까지 나왔다. "작년 말 나왔는데요. 줄 간격을 다양화한 콘셉트가 같더라고요. 특허청에 제소해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구에 미친 사나이
문구인생 외길이다. 아트박스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기획, 영업, 경영지원 등 다양한 업무를 해보고 2004년 창업했다.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요.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관심있는 제품 있으면 '나라면 어떻게 만들었을까' 생각을 자주 합니다. 책임지고 마음껏 제품 기획 해보고 싶어서 창업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나요.
"30년 넘게 문구만 해온 경험이 가장 큰 원동력이고요. 많은 제품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틈틈이 외국 사이트 찾아보고, 주기적으로 외국 문구점을 찾아 트렌드를 파악하기도 합니다. 낯선 외국 골목 가서 영감 얻을 때가 많습니다."
◇스타트업, 나이와 상관없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시장 환경은 어쩔 수 없다. "한때 매출이 20억원이 넘었는데요.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 노트 사용이 크게 줄면서 2017년 7억원까지 매출이 줄었습니다." 월급이 밀리면서 20명까지 갔던 직원이 6명으로 줄었다. 빚이 늘면서 이러다 망하겠다는 위기감이 든 적도 있다.
반전을 가져온 게 mm노트다. 히트를 치면서 매출이 극적인 회복세을 보이고 있다. "다소나마 여유가 생기면서 직원 결혼 때 신혼여행비도 주고요. 틈틈이 성과급도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제품 만드는 것 외에 다른 경영 방법은 생각하지 않는다. "창업 17년차이지만 저는 아직 스타트업입니다. 꼭 생긴지 얼마 안된 IT 업체만 스타트업이라 부를 필요 있나요. 저희처럼 쪼그라드는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업도 스타트업입니다. 노트 시장 다 죽었다고 하지만 스타트업처럼 계속 새 제품 만들며 시장을 개척하고 싶습니다."
◇회사 키워 직원들에게 지분 나눠줄 것
차기 제품으로 '포장 없는 노트'를 구상하고 있다. "노트를 투명 비닐로 감싸는 포장에 100원 가까이 듭니다. 노트 사면 바로 뜯어서 버리는 이 포장 하나에요. 환경에도 좋지 않죠. 최근 홍대입구 근처 문구점에서 포장 없는 노트를 실험삼아 팔아봤습니다. 노트 살 때마다 100원을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매칭기부를 곁들여서요. 호응이 괜찮아 본격 출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시력이 좋지 않은 노인을 위한 노트도 준비 중이다. 시력에 따라 줄 간격과 줄의 굵기를 다양화한 노트다. "저 스스로 나이가 드니 노인 문제에도 관심이 갑니다. 노인들 시력에 맞는 노트를 출시해서, 수익금 일부를 가난한 노인들에게 기부할 계획입니다."
지난해 환갑을 맞았다. 앞으로 5년만 더 일할 생각이라고 했다. "다시 시작입니다. 온라인(http://bit.ly/2vSuFZz)을 중심으로 연 매출 100억원이 목표입니다. 조기 달성하면 그전에라도 물러날 생각이 있습니다. 그 뒤로 회사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어려운 순간을 함께 견뎌준 직원들에게 지분을 나눠주려고 합니다."
자식들이 반대하지 않을까. "아들 둘 대학까지 보냈고 모두 장성했습니다. 더 뒷바라지해줄 필요 없습니다. 둘 다 제 생각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보다 친환경적인 제품을 만들어서 깨끗한 지구를 물려주는 데 도움이 된다면 바랄 게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