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전남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 서도마을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여수 여객선터미널에서 뱃길로 114㎞, 2시간 20분이 흘러 도착한 이곳은 육지보다 40여일 먼저 고개를 내민다는 해풍쑥의 중심지다. 지난 1월 18일 올 첫 해풍쑥을 출하하면서 주민들이 쑥 수확에 팔을 걷어붙였다. 김명숙(58)씨는 오전 8시면 어김없이 쑥밭으로 간다. 3300㎡ 밭에서 조카와 함께 9시간 동안 일해 하루 평균 쑥 60㎏을 수확한다. 서울 가락동시장에 40㎏을 납품하면 20만원가량의 수익이 생긴다. 서울·부산·경남 사천·충남 예산·경기 평택 등 전국 곳곳에 택배로도 판다. 김씨는 1~6월 6개월간 일해 평균 3000만원 이상 번다. 밭이 더 넓고 쑥 캐는 요령이 좋으면 같은 기간에 2배 이상 버는 주민도 많다고 한다.

절해고도(絶海孤島) 거문도에서 이른 봄이 몸을 풀고 있다. 뒷산의 비탈밭, 마늘·대파·양파·고추 등을 심었을 텃밭, 손바닥만 한 밭뙈기부터 드넓은 밭까지 녹색 융단을 깐 듯 봄쑥이 자라고 있었다. 과거 바닷가 밭에 아무렇게나 자라던 쑥이 거문도 경제를 이끈다. 이병주 여수시 향토산업 주무관은 "지난해 195개 농가가 45㏊에서 쑥 425t을 생산해 44억30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고 했다. 2012년 소득 11억원에 비해 7년 만에 4배가 늘었다. 거문도 인구는 1216가구에 2129명. 삼산면사무소는 "사실상 거문도 전체 농가가 쑥 농사를 짓는다"고 말했다. 주로 4월부터 거문도 주변에 어장이 형성되는데, 어업 비수기철 1~3월에 쑥 농사로 가욋벌이를 하는 주민이 늘었다.

거문도는 천혜의 항만과 어장을 품어 일제강점기 때부터 어업 전진 기지였다. 여수와 제주 사이 청정 해역에서 은갈치·삼치·문어·쥐치·돔 등이 늘 풍어였다. 15년 전부터 어업과 농업의 처지가 뒤바뀌었다. 서도마을의 경우 어선이 15년 만에 100척에서 33척으로 3분의 2가 줄었다. 어업은 고가의 어구와 조업선이 필요하고 유류비와 인건비가 많이 든다. 게다가 어장이 점점 멀리 형성되면서 고정 비용이 치솟지만, 예전만큼 고기가 잡히지도 않는다. 고령의 주민은 쑥으로 눈길을 돌렸다. 어업은 30·40대 주민이 주로 한다. 남주현(59) 거문도 해풍쑥 영농조합법인 대표는 "농업이 70%, 어업이 30%로 15년 전과 비교해 소득 비중과 종사자 수가 역전됐다"며 "쑥쑥 자라는 쑥이 섬의 희망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전남 여수 삼산면 거문도 서도마을에서 주민들이 해풍쑥(아래 사진)을 채취하고 있다. 뭍보다 40여일 먼저 자라는 거문도 해풍쑥은 1월 중순 출하를 시작해 초여름까지 수확이 가능하다. 다른 지역 쑥보다 출하 이후 3일 더 싱싱함이 유지돼 가락동시장에서 3배 비싸게 팔린다.

40여년 전 소규모로 흩어져 쑥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2007년 해풍쑥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면서 거문도 해풍쑥이 도약을 시작했다. 우선 엄격한 품질 관리에 나섰다. 길이를 15~20㎝로 규격화해 채취하고, 친환경 농법은 물론이고 뿌리와 상한 잎은 일일이 손으로 따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2014~2017년 4년간 향토 산업 육성을 위해 24억원을 지원했다. 쑥 체험장, 가공 시설 등을 갖췄고 홍보 마케팅을 강화했다. 2013년에 비해 지난해 거문도 해풍쑥 브랜드 가치는 3배쯤 상승했다고 한다.

영농조합법인 설립 이후 13년이 흘러 거문도 해풍쑥은 이른 봄쑥의 대명사가 됐다. 1~3월 초 전국 식단에 오른 쑥은 태반이 거문도 쑥이다. 다른 지역 쑥보다 출하 이후 3일 더 싱싱함이 유지돼 가락동시장에서 3배 비싸게 팔린다. 소금기 머금은 해풍과 해무가 키워 품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거문도 해풍쑥의 가장 큰 특징은 채취 기간이 6개월로 길다는 점이다. 거문도는 겨울에도 영하로 거의 떨어지지 않아 육지에서 싹도 나지 않는 1월 초부터 쑥이 자란다. 1~3월 국거리와 나물용 쑥을 채취하곤 했다. 이후 나오는 쑥은 식감이 거칠어져 판매가 어려웠다. 이를 안타까워하던 남 대표가 2009년 쑥을 삶아 급랭하는 냉동쑥 가공 기술을 개발했다. 4~6월 거친 쑥은 삶고 얼리는 가공을 거쳐 쑥떡용으로 판매하게 된 것이다. 거문도 해풍쑥은 그때부터 1~3월 생쑥(국거리·나물용), 4~6월 냉동쑥(떡용)으로 나눠 수확한다. 이제 한 뿌리에서 난 쑥은 한 해 4회 수확이 가능하다.

10여년 만에 냉동쑥은 거문도 해풍쑥의 주력 상품이 됐다. 이파리가 넓고 풍미가 있는 거문도 쑥으로 만든 쑥떡만을 고집하는 전국의 단골 떡집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해풍쑥 생산량 430t 중 100t이 냉동쑥이다. 오는 4월 출하를 앞둔 냉동쑥을 선점하려는 전화 예약이 2월부터 쇄도하고 있다. 남 대표 아내 이진자(59)씨는 "냉동쑥은 물량을 못 맞출 정도로 전국 떡집의 예약 건이 쌓여 선착순으로 공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