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현지 시각) 현대캐피탈뱅크유럽은 글로벌 렌터카업체 식스트(Sixt)와 식스트리싱(Sixt Leasing SE)의 지분 인수 계약을 마쳤다. 인수가격은 주당 18유로로, 2019년 식스트리싱 실적에 대한 배당금(주당 최대 0.9유로)도 부담하는 내용이다. 현대캐피탈은 식스트리싱에 대해 "유럽에서 손꼽히는 독립 리스사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3분기 식스트리싱은 자산 1조7800억원·연매출 8389억원을 기록했다. 운영 중인 차량만 총 15만대가 넘는다.
포화된 국내 금융시장에서 눈을 돌려 해외에서 신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금융사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미 미국·독일·중국·브라질 등 전 세계 9개국에서 활약 중인 현대캐피탈도 세계시장에서 한 발 더 도약한다. 이번엔 자동차의 고장 유럽에서 렌터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리스사를 인수했다. 현대캐피탈이 해외 기업을 인수한 건 처음이어서 더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글로벌·디지털 두 마리 토끼 한 번에
이번 계약을 통해 현대캐피탈뱅크유럽은 식스트가 보유한 식스트리싱의 주식 864만4638주(42%)를 확보했다. 남은 지분 역시 3월부터 공개 매수에 들어간다. 공개 매수를 거쳐 5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2020년 마무리될 인수 과정에 최소 2652억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식스트리싱'이라는 브랜드는 인수 후 5년간 유지한다. 유럽 내 기존 고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식스트리싱 브랜드 가치와 인지도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현대캐피탈 황유노 사장은 "이번 인수로 현대캐피탈뱅크유럽의 모빌리티 플랫폼 비즈니스와 리스 상품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유럽 자동차 금융시장에서도 입지를 다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모빌리티의 미래는 디지털에 있다'는 철학 아래 온라인·모바일 채널 역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차량 리스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전략적 파트너를 얻기 위해 유럽 30여 개국 50여 개 리스업체 중 사업 국가 범위, 운영 규모 등을 고려해 식스트리싱을 최종 인수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번 인수로 현대캐피탈뱅크유럽은 식스트리싱이 보유한 온라인 기반의 대(對)고객 리스 판매 채널과 중고차 활용 플랫폼을 확보하게 된다. 더불어 식스트리싱의 고객 사후관리, 차량 유지보수·보험 등 전반적인 차량 관리 서비스에 대한 종합적인 노하우도 얻어 모빌리티 사업 전반의 경쟁력을 제고하게 됐다.
◇현대차 공유차량 플랫폼과 시너지 기대
현대캐피탈의 이번 인수 덕분에 현대자동차그룹의 새로운 글로벌 모빌리티(승차공유) 사업 전략도 구체화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61조원을 투입해 자동차 제조업을 넘어 '스마트 모빌리티 설루션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취지의 '현대자동차 2025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자동차업계는 모빌리티 시장이 자율주행 기술 발달과 공유경제 확산에 따라 향후 5년 안에 400조원대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대차의 2025 전략은 지능형 모빌리티 제품과 지능형 모빌리티 서비스를 큰 두 축으로 한다. 신차를 생산한 뒤 구매부터 정비, 관리, 금융, 보험, 충전 등 자동차 관련 주요 부대 서비스를 결합해 제공하는 사업 모델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이를 떠받치는 전략 중 하나가 '플랫폼 사업 기반 구축'이다. 지능형 모빌리티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창구를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현대차가 추구하는 플랫폼 사업 기반 구축의 첫걸음이 현대캐피탈의 식스트리싱이 될 전망이다. 식스트리싱이 이미 온라인 기반의 강력한 대고객 플랫폼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투자증권은 이번 인수 소식에 대해 "인수가 성사될 경우 현대차는 스마트 모빌리티 구현 계획에 더 가까워질 전망"이라고 평했다.
◇11개 해외 법인·5300명 임직원과 함께 글로벌 공략
현대캐피탈은 해외에서 새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정태영 부회장의 지론 아래 글로벌 비즈니스 확장에 힘쓰고 있다. 1989년 미국 진출을 시작으로 지금은 중국, 독일, 영국 등 총 9개국에서 11개 해외 법인을 운영 중이다. 해외 법인의 외국인 임직원만 2500명에 달한다. 한국을 포함한 전체 임직원 수(약 5300명)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4월에도 브라질에서 현대자동차 전속 금융사로서 '방코 현대캐피탈 브라질(BHCB)'을 공식 출범했다. 브라질 내 자동차금융을 넘어 수익성이 높은 '보험 중개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현대캐피탈은 유럽 내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유럽 국가에서도 영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현대캐피탈은 국내에서도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혁신을 거듭하며 내실을 다지고 있다. 국내 자동차금융 업체에선 처음으로 서비스 신청 전 과정을 디지털화한 '디지털 자동차 신청 시스템'을 도입했고, 최근에는 중고차 구독 서비스 '딜카클럽'도 시작했다. 한 달에 일정 구독료를 내면 연식 5년 내 현대·기아차 모든 차종을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