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정부의 한 보육원. 지난주부터 2월 생일인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 입이 삐죽 나왔다. 대답 소리가 작아지고, 보육교사의 말도 듣는 둥 마는 둥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생일 파티를 못하게 돼서다. 그동안 이 보육원에서는 매달 생일파티를 열어왔다. 자원봉사단체 회원들이 찾아와 생일을 맞은 아이들이 원하는 음식을 배달시켜 주고 조그마한 장난감도 줬다. 그러나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우한 코로나) 확산과 함께 이번 달 파티는 무기한 연장됐다. 자원봉사자를 포함한 외부인 출입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원장 정모(53)씨는 "생일이건 아니건, '멋진 대학생 언니·오빠'를 기다리던 아이들 모두가 요즘 시무룩하다"며 "왜 못 오는지 아이들도 알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무겁다"고 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홀몸 노인이나 복지시설 내 어린이와 장애인들이 '우한 코로나 고독감'에 시달리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1월 말 전국 복지시설들에 '외출을 자제시키고 외부인 출입도 제한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상당수 복지시설이 지침에 따라 자원봉사단체에 "당분간 출입 중단"을 통보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번 달 17일 중 휴일을 제외한 하루 평균 자원봉사자는 약 9만2210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11만861명)에 비해 17% 줄었다. 가족 없는 어린이와 노인들은 외출이 어려워진 데다 그동안 친밀감을 쌓아왔던 자원봉사자와 만남까지 끊기면서 무력감과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18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보육원 입구에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해 외부인 출입 자제를 요청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 보육원은 서울시 지침에 따라 자원봉사자들의 방문을 차단하고 있다.

18일 오후 찾은 서울 중구 서울중앙시장 인근 주택가. 영하까지 떨어진 날씨에도 80대로 보이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왜 추운데 나와 있느냐고 묻자 많은 이들이 "우한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을 못 만나서 밖에 있다"고 했다.

서울 성북구 빌라에서 홀로 사는 문희분(가명·85)씨는 본지 기자에게 "지원이가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원이'는 1주에 한 번씩 찾아와 문씨의 혈압 등을 확인해주던 자원봉사자다. 원칙대로라면 건강만 확인하고 돌아가야 하지만, 어질러진 집을 치워주고 냉장고 반찬을 꺼내 점심까지 차려주고 가는 '지원이'에게 문씨는 속으로 많이 감사했다고 한다. 문씨는 "지원이가 '전염병' 때문에 3주째 못 오고 있다. 목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할까 하다가 바쁜가 싶어 며칠에 한 번 오는 문자 메시지에 만족한다"고 했다.

자원봉사자들도 애가 탄다. 직장인 박성일(33·인천 계양구)씨는 봉사를 가지 못해 늘 뵙던 어르신들을 못 보고 있다. 주말마다 거주지 인근 복지관에서 점심 식사를 만드는 봉사 활동을 해왔는데, 복지관에서 '당분간 중지하게 됐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박씨는 "주말마다 식사 대접해 드리고 집에 오면 가슴 속이 가득 차는 기분이었는데, 3주 전부터 봉사를 하지 못해 답답하다"고 했다.

스스로 위축되는 봉사자들도 있다. 20년간 봉사를 해왔다는 김모(52·대전시)씨는 "29번째 확진자 소식을 접하고 나니 내가 오히려 바이러스를 옮기는 숙주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당분간 봉사를 쉬기로 했다"고 했다. 29번째 확진자는 확진 전까지 일주일에 두세 번씩 홀몸 노인들에게 도시락 배달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전파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서울 청량리역의 무료 급식소 '밥퍼나눔운동본부'는 지난 5일 자원봉사자들이 부족해 회사 직원 중 일일 봉사자를 급하게 구해야 했다.

정부 권고를 무시하는 시설도 있다. 강원도 한 보육원은 지난주부터 소속 중학생 10여명을 매주 1회 외부 영어·수학 학원에 보내고 있다. 일주일에 2~3번씩 와서 가르쳐주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오지 못해서 내린 결정이다. 보육원 관계자는 "오는 사람도 없고, 밖에 나가지도 못하니 아이들이 무기력해지던 상황"이라며 "원내 시설에서 배드민턴, 축구만 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나들이 겸 학원 방문을 허락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