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이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은 세계 어디서든 나올 수 있다."(뉴욕타임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9일(현지 시각)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각본상·국제극영화상까지 4개 부문 트로피를 거머쥔 뒤, 해외 언론들은 한국 영화의 선전(善戰)뿐 아니라 아카데미상의 변화에도 주목했다. 90여 년 역사 내내 미국 영화 중심의 '국내상'에 머물렀던 아카데미상이 비로소 세계 영화계를 아우르는 '국제상'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고 평한 것이다. CNN은 '역사적 선택'이라고 표현했다.

아카데미상 역사에서 비(非)영어권 영화가 최고상인 작품상 후보에 오른 건 10차례에 불과하다. 프랑스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의 1939년 '위대한 환상'을 시작으로 1970년 'Z'(감독 코스타 가브라스), 1999년 '인생은 아름다워'(로베르토 베니니), 2001년 '와호장룡'(리안), 2012년 '아티스트'(미셸 아자나비시우스), 2013년 '아무르'(미하엘 하네케) 등이다. 미국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일본어 대사로 촬영한 전쟁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포함해도 11차례다.

이 가운데 '기생충' 이전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건 딱 한 차례 '아티스트'뿐이었다. 그나마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면 흑백 무성(無聲) 영화였다. 해외 걸작 영화들도 넘지 못했던 언어와 국경의 높은 '이중 장벽'을 한국 영화가 뛰어넘은 셈이다. "BTS 같은 K팝 그룹과 TV 드라마, 축구 선수들에 이어 영화가 한국의 새로운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폭을 보여준다"(가디언) 같은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계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영향으로 인종·국적·성별 다양성을 배려하기 위해 애쓴다. 이 같은 추세와 달리, 아카데미상은 백인 남성 위주에서 탈피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에는 '너무나 하얀 오스카(#OscarsSoWhite)' 같은 구호를 내걸고 아카데미상의 인종적 편향성을 꼬집는 운동도 불거졌다.

이에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투표권이 있는 회원의 소수 인종 비율을 8%(2015년)에서 16%(2018년)까지 늘렸다. 또 지난해 59개국 출신의 영화 관계자 842명을 새 회원으로 위촉했다. 결과적으로 '기생충'은 다양성과 공정함을 높이기 위한 아카데미상 변화 노력의 수혜를 받은 첫 작품이 됐다. 인도·동남아 언론도 '기생충'의 수상 소식을 톱기사로 보도하면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영화 평론가 전찬일씨는 "101년 한국 영화사에 한정해서 '기생충'의 성취를 말하고 있지만, 실은 한국 영화사를 넘어 아시아 영화와 세계 영화의 기념비적 사건으로 진단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아카데미상의 유래] '오스카' 이름은 1939년부터여배우 남편 姓이라는 설도

천하의 아카데미상도 시작은 단출했다. 1929년 5월 할리우드 호텔에서 270명이 모여 12개 부문의 수상자를 발표했다. 3시간 35분에 이르는 현재 시상식과는 달리 첫회 때는 15분 만에 끝났다. 당시에는 석 달 전에 수상자에게 미리 통보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2회부터 현장 발표로 바뀌었다. 첫 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직후 파티의 참가비는 5달러. 오늘날 기준으로는 74달러(8만7000원) 정도다.

오스카상 별명은 1939년부터 붙었다. 트로피 길이는 34.3㎝, 무게는 3.856㎏. 인기 배우 벳 데이비스의 첫 남편 성(姓)에서 따왔다, 아카데미협회 집행위원장 마거릿 헤릭이 트로피를 보고 자신의 삼촌 오스카와 닮았다고 말한 데서 왔다 등 이름의 연원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있다. 당시 미 언론에서 '오스카'라는 이름을 쓰면서 관용적으로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