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국산 수제 맥주를 사 마시는 것은 대학생에게 사치다. 그런데 최근에 편의점에 갔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한 캔에 3000원을 훌쩍 넘던 국산 수제 맥주값이 많이 내려가 '4캔 1만원'짜리까지 등장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주류 가격이 아닌, 양(量)을 기반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가 도입되면서 국산 수제 맥주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가격 인하를 계기로 한국 수제 맥주 시장이 큰 활기를 띠리라는 기대가 나온다. 내 또래 그 누구보다 수제 맥주에 대해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나는 현지에서 수제 맥주의 경쟁력을 직접 알아보고 싶었다. 미 수제 맥주 시장을 대표하는 오리건주(州) 포틀랜드를 찾은 이유다. 젊은 층을 위주로 개인 취향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2018년 1089억달러였던 글로벌 수제 맥주 시장 규모는 2025년 1866억달러로 성장하리라고 시장 조사 회사 앨라이드 마켓리서치는 전망한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개척이 더뎌 나무를 팔아 살던 포틀랜드는 수제 맥주를 적극적으로 육성하면서 전 세계 맥주 마니아들이 찾는 맥주 성지(聖地)로 변신했다. 오죽하면 비어바너(beervana)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비어(맥주·beer)와 너바너(열반·nirvana)의 합성어로 맥주 천국이란 뜻이다. 포틀랜드는 원료부터 판매까지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남쪽으로 약 106㎞ 떨어진 곳에 있는 홉(맥주 원료로 쓰이는 식물) 농장을 찾았다. 이곳은 미 서부 최대 브루어리(맥주 공장) 중 하나인 로그(ROGUE)가 직접 운영한다. 이 농장 앨리 워드 총책임자는 "현재 수제 맥주 트렌드는 홉부터 정성을 들인다는 것"이라고 했다. "단언컨대 최고 맥주는 최고 홉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가까운 곳에서 직접 홉을 재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제 맥주 산업은 포틀랜드 사람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위드머(Widmer) 브루어리에서 25년간 일한 더그 레베르크씨는 "포틀랜드엔 80여개, 근교까지 치면 약 130개의 브루어리가 있다. 수제 맥주를 만드는 과정엔 기계가 아닌 사람 손이 꼭 필요한 일이 많기 때문에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리건주에서 약 3만1000명이 수제 맥주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포틀랜드는 맥주 애주가를 유혹하기 위한 관련 상품도 다양하게 만들어낸다. 매해 7월에 열리는 수제 맥주 축제엔 약 6만~7만명이 다녀간다. 여럿이 함께 타는 자전거에 올라 유명 양조장을 돌아다니는 자전거 투어는 '맥주를 마시고 자전거를 탄다'라는 발상의 전환으로 큰 인기를 끈다. 취중(醉中) 자전거가 괜찮을까 의아했지만 주객(酒客)들은 페달만 돌리고 핸들은 (맨정신인) 행사 진행 요원이 잡는 방식이었다. 기발했다! 한 주 동안 경험한 포틀랜드 수제 맥주 산업의 내공은 단단해 보였다.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 즐거운 경쟁, 또 맥주를 향한 시민의 열정에 나는 기분 좋게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