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현 탐험대원

지난해 6월 독일 베를린 중심부 알렉산더광장은 독일 최대 임대 회사인 도이체보넨의 주택을 몰수하자는 시위로 북적였다. 치솟는 집값에 화가 난 시민들은 임대료를 동결하고 임대 회사가 소유한 주택을 정부가 사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베를린 정부는 5년 동안 임대료를 동결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경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나는 10억원, 때로는 20억원이 넘는 서울 주요 지역의 집값을 볼 때마다 큰 괴리감을 느끼곤 했다. 내 집 장만은 어려워졌고, 덩달아 오르는 전·월세에 분노를 느끼는 이가 많다고 한다. 극히 일부지만 베를린처럼 전·월세를 묶어버리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다. 3월부터 베를린에서 시행될 임대료 동결안은 과격해 보인다. 나는 지난달 베를린을 찾아 왜 시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여러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세입자 대표 "시민 수만큼 집 늘지 않아"

베를린 세입자협회는 작년 여름 임대료 동결 법안을 이끌어낸 '도이체보넨 몰수운동'을 주도했다. 임대료 동결 법안의 법적 근거가 된 방대한 통계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 협회는 1883년 설립됐고 가입자가 18만명이다. 협회 라이너 빌트 대표는 "2002~2018년 사이에 임금은 42%가 올랐는데 주택 임대료는 55%가 상승했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베를린 인구는 최근 5년 동안 매년 3만명씩 늘었습니다. 반면 주택은 평균 1만2000채 증가하는 데 그쳤어요. 당연히 매년 5~10%씩 임대료가 올랐습니다. 여기에 중국·러시아·룩셈부르크 등의 '큰손' 투기 세력까지 들어왔습니다."

독일 베를린 주택 임대료가 최근 가파르게 오르자 시 정부는 5년 동안 월세를 동결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내놓았다. 임대 사업자들이 새집 건설을 포기해 주거 문제가 악화하리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베를린의 부동산 개발 현장.

빌트 대표는 일단은 임대료 동결에 환영한다면서도 경직된 가격 통제가 불러올 부작용에 대한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 "임대료 수익이 줄면 새 주택을 지을 욕구가 저하되겠지요. 또 임대 주택의 질(質)이 나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정부가 모든 임대 주택을 소유해 관리하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일종의 사회 복지 차원으로요."

◇임대주택 사업자 "지으려던 집 포기"

세입자 연대가 악덕하다고 지목한 임대주택 회사 도이체보넨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라우라 크루스 언론 홍보 담당자는 "집을 (임대로) 내놓으면 1000명이 넘게 지원을 한다. 그런데 임대료를 묶어둘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임대료만 동결한다고 주택 문제가 해결될까요. 집을 더 많이 짓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라 봅니다. 우리가 분석한 결과, 2030년까지 집 20만 채가 더 필요합니다. 그런데 최근의 임대료 제한 조치 탓에 집을 지으려다가 취소한 업체가 적지 않아요. 우리도 몇몇 건설 계획을 취소할까 생각 중이고요. 공급은 더 줄어들 겁니다."

크루스는 독일 함부르크시(市)를 보라고 했다. "몇 년 전 함부르크는 정부가 집을 많이 지어서 공급했습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임대료 상승세가 잦아들었지요." 수급에 따라 형성된 가격이 올랐단 이유로 기업을 사회악으로 간주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도시 전문가 "서울에선 성공 못 한다"

"뉴욕에서도 임대료 동결 실험이 성공할 것 같으냐고요? 제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훔볼트대 도시사회학과 안드레이 홀름 박사는 강경한 진보 성향 학자다. 임대료 제한법을 만들 때 세입자 단체들과 함께 법안 작성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는 예상과 다른 답변을 했다. "이 실험이 성공할지 아닐지 결과는 알 수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승인되는 가격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공산 국가) 구(舊)동독 시민의 인식이 여전히 남은, 독일이란 국가의 특수성은 제도 도입이 가능했던 중요한 변수였습니다. 한국 국민이 이를 용인할 수 있을까요?" 그는 "도시마다 고유한 특성과 배경이 다르다. 서울이 무분별하게 독일을 베낀 정책을 펼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를린에서 만난 전문가 중 누구도 '임대료 동결안'이 만능 해결책이라 여기지 않았다. 강경할 줄 알았던 학자는 이 법안을 '실험'이라고 했고, 법안을 밀어붙인 시민단체 대표는 부작용을 조심스러워했다. 이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 지금 명확히 결론을 내리긴 어렵다. 그러나 탐험 후 한 가지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복잡한 부동산 문제에 대해 정부가 확실하고 간단한 해법을 찾았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오답(誤答)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