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온 각설이는 올해도 온다. '나'로 말하자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4년에 한 번 돌아오기 때문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총선 아니냐고? 그따위 부류에 넣지 마라. 나는 광막한 우주에서 '노는' 존재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기까지 365.2422일이 걸린다. 1년을 365일로 고집하면 해마다 0.2422일이 남는다. 이 우수리를 4년치 모으면 1일쯤 된다. 그럼 4년에 한 번은 1년을 366일로 합시다. 지금 우리가 쓰는 달력(그레고리력)을 만들 때 이런 원칙을 세웠다. 이쯤 되면 내가 누구인지 대부분 안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2월 달력을 보라. 평년에 없던 숫자가 구석에 떡 하니 붙어 있을 것이다. 2월 29일. 그렇다. 내 이름은 '윤일(閏日)'. 4년 만에 이 몸이 컴백했다.

일러스트= 안병현

결혼과 출산은 피하고 보자?

한자 '윤(閏)'에는 잉여(쓰고 남은 것)라는 뜻이 담겨 있다. 윤일은 지구의 공전주기가 365일로 똑 떨어지지 않고 0.2422일이 남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보정하기 위해 넣는 날이다. 2월 29일이 들어 있는 해를 윤년이라 부른다.

서양이 1582년부터 쓰기 시작한 그레고리력에는 두 가지 규칙이 더 있다. 4년마다 윤년을 두되 100년째가 되면 평년으로 한다. 또 400년에 한 번은 평년이 아니라 다시 윤년으로 한다. 한국천문연구원 박한얼 선임연구원은 "쉽게 말해 400년 동안 윤년을 97회 두는 것"이라며 "오차가 많은 율리우스력을 개선한 그레고리력은 1년의 평균 길이가 365.2425일로, 실제 천문주기(365.2422일)에 가깝다. 3300년이 지나야 하루 차이가 날 만큼 정교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공식 역법은 양력이며 음력을 병행해 쓰고 있다. 고종 황제가 1895년 양력을 채택하면서 그레고리력을 바로 들여왔다. 설날과 추석 같은 전통 명절은 음력으로 결정된다.

2월 29일에는 전국 산부인과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줄어든다. 이날 태어나면 생일이 4년에 한 번 돌아오기 때문에 제왕절개 수술을 기피하는 것이다. 차병원 이정미 홍보실장은 "2월 29일에는 수술 예약이 크게 줄어들곤 한다"며 "젊은 부모는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조부모 반대가 심하다"고 했다.

결혼 시장에서도 2월 29일은 출산 못지않게 찬밥 신세다. 이날 화촉을 밝히면 올림픽도 아닌데 4년마다 결혼기념일을 맞게 된다. 5년 차 웨딩플래너 이현영(33)씨는 "근년 들어 그것을 더 특별하게 생각해 일부러 윤일을 찾아 결혼하는 커플이 늘고 있다"면서도 "여전히 10쌍 중 7쌍은 2월 29일을 피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그래서 이날은 30~40% 비용을 할인해주는 결혼식장이 많다.

장례는 어떨까. 죽음의 시점은 인력으론 어쩔 수 없지만 제사를 양력으로 지낼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2월 29일에 돌아가셨는데 이듬해에는 2월 29일이 없기 때문이다.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서동환 사무장은 "2월 29일이 여느 날에 비해 사망자가 적다고 체감한 적은 없다"며 "제사는 보통 음력으로 지내기 때문에 괜찮지만 양력에 하는 집안이라면 복잡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철영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기일(忌日)은 저승에서 태어난 날"이라며 "구태여 양력에 제사를 모셔야 한다면 2월 28일에 지내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법정에도 소환된 2월 29일

2월 29일을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국방의 의무를 진 장병들과 감옥에 갇힌 수형자들이다. 복무 기간 또는 수형 기간 안에 윤일이 들어 있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하루 더 묶여 있기 때문이다.

2월 29일은 법정에 불려간 적도 있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수형자가 윤일 때문에 평등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무고죄로 기소돼 2011년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은 그는 그해 11월 10일부터 이듬해 7월 9일까지 복역했는데, 2012년에 2월 29일이 있어 하루 더 감옥살이를 한 게 억울하다는 취지였다.

형법 제83조는 형기에 대해 '년 또는 월로써 정한 기간은 역수(태양력)에 따라 계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형기는 연월 단위이고 한 달은 28~31일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상반기에 복역하는 사람은 하반기에 복역하는 사람보다 실제 복역 일수가 3일 적다. 연월로 계산하는 방식이 수형자에게 늘 유리하거나 불리하다고 말할 수 없다"며 그 헌법소원을 기각했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복무 기간에 2월 29일이 들어 있으면 잘못한 게 없어도 하루 더 짬밥을 먹어야 한다. 복무 일수가 아니라 복무 개월 수로 계산하기 때문에 차감을 기대할 수 없다. 복불복이다.

급여 생활자도 불만일지 모른다. 윤년은 평년(365일)과 달리 366일이지만 무심하게도 연봉은 똑같다. 왠지 무급으로 하루 봉사한 기분이라고? 그렇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한 달이 28일이든 31일이든 월급은 같으니까. 다만 올해는 2월 29일이 들어오면서 현충일과 광복절을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밀어내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사흘 연휴를 두 번이나 날려먹었으니 미움을 살 만하다.

은행들이 윤년에 대출 이자는 366일치를 물리고 예금 이자는 365일치만 주던 부당한 시대가 있었다. 2012년의 경우 이런 편법 계산으로 은행들이 약 2715억원을 더 챙겼다. 금융소비자연맹 등이 지적하고 나서야 2013년 7월부터 이 관행을 바로잡은 새로운 약관이 적용됐다.

특별해서 더 소중한 날

조선시대 사람들은 음력을 썼다.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이다. 음력에서 1년의 길이는 약 354.3671일로 양력보다 약 11일 짧다. 달력은 농사짓는 때를 알려주는 지침인데 음력으로는 절기가 잘 맞지 않게 된다. 이 오차를 보정하려고 음력에서는 윤달을 넣는다. 음력에서 윤달은 양력에서 2월 29일과 비슷한 존재인 셈이다.

풍수학자 김두규 우석대 교수는 양력과 음력을 '롱다리와 숏다리의 경주'에 빗댔다. 몇 바퀴 돌고 나면 롱다리(양력)가 한 바퀴를 추월할 수 있으니 숏다리(음력)에게 덤으로 한 바퀴를 주는 게 윤달이다. 김 교수는 "도교적 관념으로 보면 윤달은 옥황상제가 지상에 파견한 신들이 하늘로 올라가 업무보고를 하는 기간이라 지상에서는 '해방의 달'"이라며 "원래는 길흉을 따질 필요 없이 결혼, 이장, 이사 등 무엇을 해도 무탈한 달이었는데 현대로 와서는 흉한 일(이장, 장례, 수의 짓기)만 하는 것으로 의미가 변색됐다"고 설명했다. 윤일(2월 29일)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는 뜻이다.

2월 29일에 태어날 확률은 1461분의 1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세계에서 윤일 출생자는 500만명이 안 된다. 윤년이 아니면 생일은 그냥 건너뛰어야 하나. 음력 생일을 챙겨 먹는다는 사람이 있고, 4년 만에 2월 29일이 돌아오면 거하게 파티를 벌이는 사람도 있다.

쇼트트랙 지도자 이문현(24)씨는 주민번호가 '960229'로 시작한다. 어머니 배 속에 거꾸로 들어서 있어 수술이 불가피했다. 그는 "윤년이 아닌 해에는 2월 28일이나 3월 1일에 케이크를 먹기도 하고 그냥 넘어가기도 하는 식이었다"며 "어릴 때는 매년 생일이 돌아오는 친구들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2월 28일에 통신사에서 축하 메시지를 보내오고 3월 1일엔 소셜미디어로 축하를 받는 등 생일이 이틀에 걸쳐 이어진다는 장점은 있다고 덧붙였다.

"생일이 특별해서 더 소중하다는 걸 성인이 되고서야 알았어요. 흔하지 않은 날이라 저를 기억해주는 것도 좋아요. 오는 29일은 4년 만에 맞는 생일이자 선수 생활 마치고 지도자로는 처음이라 새 출발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노상 그날이 그날 같지만 2월 29일은 다르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해마다 6시간씩을 모아 창조한 하루랄까. 평생 약 20번밖에 오지 않으니 허투루 보낼 수 없는 하루다.

아일랜드는 2월 29일에 여성이 프러포즈

고대 로마의 첫 달력은 1월부터 10월까지 열 달뿐이었다. 당시 한 해의 첫 달은 1월이 아니라 파종(봄)이 시작되는 3월이었다. 라틴어로 septémber는 7번째(영어로는 9월), octóber는 8번째(영어로는 10월)라는 뜻이다. 지금과 두 달 차이가 난다.

윤일을 포함해 날짜 변동을 정확히 알려주는 기능이 내장된 기계식 시계. 시간의 총합이 삶이다.

열두 달 체제의 달력은 기원전 8세기쯤 처음 등장했다. 달의 움직임에 맞춰 1년을 355일로 잡았다. 기원전 46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태양을 기준으로 1년을 365일로 하되 4년에 한 번 윤년을 두는 율리우스력을 만들었다. 홀수 달에는 31일을, 짝수 달엔 30일을 배정했다. 다 합치면 366일이 되기 때문에 가장 만만한 마지막 달(현재의 2월)에서 하루를 뜯어 29일로 줄였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생일이 있는 8월에 자기 이름(august)을 붙였고, 그 달이 다른 달보다 짧은 게 싫어 31일로 늘렸다. 그렇다면 어디서 하루를 뺐을까. 마지막 달인 2월이 또 축났다. 평년에 2월이 28일로 끝나는 이유다.

4년에 한 번 오는 2월 29일은 특별하다. 아일랜드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프러포즈하는 풍습이 있다.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이날 결혼하면 불길하다고 여긴다. 미국 텍사스주 앤서니에서는 1988년부터 4년마다 '세계 윤년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 축제 창립자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20번째 생일을 맞았을 때 80세였는데 나이를 덜 먹는 것 같다"고.

1년은 52만5600분이지만 윤년에는 덤으로 1440분(하루)을 더 살 수 있다. 시간의 총합이 삶이다.

자동 영구 달력(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이 있는 몇몇 기계식 시계는 윤년의 2월 29일까지 날짜 변동을 정확하게 계산한다. 시계 전문 잡지 '레뷰 데 몽트르' 이은경 편집장은 "이 똑똑한 시계를 갖고 있다면 2099년 말까지는 수동 조정하느라 불편할 일이 없을 것"이라며 "다만 그 시계를 물려줄 사람에겐 '100년에 한 번은 서비스를 받으라'고 귀띔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