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 의대는 암 진단 연구센터를 국내 한 지방자치단체와 공동으로 세웠다. 경남 김해시다. 하버드 의대와 김해시는 지난 2018년 9월 김해시 주촌면에 '김해·하버드 바이오이미징센터'를 세웠다. 김해시가 12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하버드 의대 고든의료영상센터 연구진이 부산대 연구진과 함께 암 표적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의료진이 수술할 때 암세포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기술이다.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던 인공지능(AI) 기업 딥노이드는 지난해 11월 본사를 지방으로 옮겼다. 역시 김해시다. 딥노이드는 AI 기술로 엑스레이 등의 의료 영상을 분석한다. 김해시는 딥노이드 이전을 위해 디지털 병원인 정석연구재단 설립을 지원했다.

경남 김해시 어방동 분산성에서 바라본 김해시가 밤의 품에 안겨 불을 밝히고 있다. 사진 왼편으로 가야 수로왕릉이 있는 회현동·동상동 등 구시가지, 오른편으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내외동 신시가지가 보인다. 사진 가운데 저 너머 보이는 산이 '김해의 주산'인 불모산이다. 불모산 기슭 오른편에 유난히 빛을 내는 지역이 전국 유일의 의료산업 강소특구인 주촌면 일대다.

첨단 의료기관·기업들이 김해로 몰리고 있다. 국내 최대 의료 산업 도시로 커가고 있는 김해시가 지원과 투자를 대폭 늘린 결과다. 김해시 주촌면 김해산업진흥의생명융합재단(김해의생명센터)은 김해의 변신을 이끌고 있다. 지난달 13일 찾은 주촌면 농소마을 초입은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었다. 마을 표지석을 지나 '골든루트 산업단지' 표지판이 달린 굴다리를 지나자 딴 세상이 시작됐다. 단층 공장 건물이 빽빽한 단지 한가운데 의생명센터가 보였다. 센터엔 의료기기·제품 제작업체 36곳이 입주해 있다. 이날 만난 차병열 김해의생명센터 연구기획단장은 "앞으로 글로벌 의료 기업을 최대한 유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정부가 주촌면 일대를 국내 유일 의생명 의료기기 강소특구로 지정하면서 연간 5000만~8000만원의 기술개발비를 지원하게 된 것도 기업 유치에 도움이 됐다. 의료기기 제조업체 에어랩의 최정현(41) 연구소장은 지난 4일 "의료기기는 샘플 금형을 제작하거나 의료기 인허가를 받는 데 비용이 많이 필요해 지원금이 큰 도움이 된다"며 "김해시에서 컨설팅도 해줘 제품 개발에 들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우식 딥노이드 대표도 "김해는 지원책이 다양해 기업들에 매력적"이라고 했다.

김해의생명센터에 입주한 재활·IT헬스케어 전문 기업 '거명'의 연구원이 모의 실험을 하고 있다.

원래 김해는 전통 제조업으로 커왔다. 7500곳에서 8만6000여 명이 일한다. 업체 중 97%가 50인 이하, 73%는 10인 이하 종업원의 중소 규모다. 자동차나 선박에 쓰이는 기계금속 제작, 용접을 주로 한다. 국내 자동차·조선업이 불황의 위기를 맞자 김해도 함께 흔들렸다. 영세 사업장이 많아 위기감이 더 컸다. 살아남기 위해 눈을 돌린 것이 의료 산업이다. 전국 5곳에 부속 백병원을 둔 인제대 의대가 있고 교통의 요지라는 장점이 있었다. 김해는 국제공항, 국제여객선터미널이 가까이 있고 남해고속도로와 동·서김해 IC 가 있어 시내 어디서도 10분이면 고속도로를 탈 수 있다. 때마침 정부의 지역 균형 발전 계획에서 의료 산업을 특화한 개발안이 채택됐다. 중심지는 주촌면이었다. 땅값이 싸 일대 개발에 여력이 풍부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의료 관련 업체가 속속 입주하면서 쌀농사를 짓고 단감·부추를 재배하던 주촌면은 첨단 의료 산업을 이끄는 핵심 기지로 변모했다.

의생명센터도 기업 지원을 맡은 비즈니스센터가 완공되는 등 규모를 키웠다. 하지만 우수 연구 인력 유치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2018년 김해시는 하버드 의대에서 국내에 연구소를 지을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해 6~8월 김해시 담당자들이 두 차례나 미국을 찾아가 설득에 나선 결과 경쟁 지자체를 물리치고 유치에 성공했다.

김해시는 제조업체들이 의료 산업 관련 업종으로 전환하면 기술개발비와 컨설팅, 입주 공간 지원 등 파격적인 혜택을 주고 있다. 최근 4년 사이 18개사가 기술개발비를 지원받아 업종을 바꿨다. 매출액은 2018년 9억8500만원에서 지난해 16억원으로 1.6배로 뛰었다.

오는 7월엔 '메디컬 디바이스 실용화 센터'도 주촌면에 들어선다.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로 예산 300억원을 들여 연구·개발실과 검사 시설, 기업 입주 시설 등을 만들 예정이다. 기업 15곳이 입주 가능하지만 이미 30곳이 입주를 신청했다. 차 단장은 "제조업체가 많은 김해의 강점을 살려 주삿바늘, 거즈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제품부터 국산화하는 강소기업을 키우는 게 목표"라고 했다. 허성곤 김해시장은 "의료기관과 기업을 유치하면 일자리가 늘고 도시 경쟁력도 함께 높일 수 있다"며 "앞으로 우수 인력을 더 많이 유치해 국내 대표 의료 산업 도시로 자리 잡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