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인한 경찰 권력 비대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정보경찰'을 개혁하겠다고 했던 경찰이 최근 오히려 정보경찰의 정보 수집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정보경찰 개혁은 검찰의 수사 지휘에서 벗어나게 된 경찰이 막강해진 권한을 오·남용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취지로 추진돼 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여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경찰의 권한이 많이 커졌기 때문에 경찰 개혁 법안도 후속으로 나와야 한다"고 했다. 같은 달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역시 "(정보경찰을) 철저히 감시할 수 있도록 개혁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말하는 정보경찰 개혁의 핵심은 정보경찰들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경찰이 '치안 정보'를 수집한다는 명목으로 집회 관련 첩보나 노조 활동 동향, 민심 등 여론 정보를 수집해 '사찰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에 경찰은 경찰개혁위원회 논의를 통해 정보 수집 범위를 "범죄·안보 관련 정보로 제한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정보경찰 인력도 10% 이상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최근 경찰청 정보국이 소속 외근 정보경찰을 활용해 지방별 정보 수집 체제 구축을 시도하며 오히려 정보 기능 확대를 추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청 정보관이 18개 지방경찰청 소속 정보관을 통해 지역 정보 상황을 파악하도록 한 것이다. 특히 경찰청은 정보 수집 실효성 확보를 위해 소속 정보경찰들에게 기존 1주일에 2~3건이던 보고서를 1일 1건(件)씩 쓰도록 하는 서약서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같은 정보활동 강화가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정보경찰은 "결국 경찰청 본청 차원에서 각 지방 민심과 여론 동향을 파악하려는 것"이라며 "자칫하면 경찰이 정치 개입 논란에 휩싸일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2016년 4월 20대 총선 때 정보경찰들을 시켜 친박계 후보들이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선거 관련 정보를 수집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전직 경찰청장이 구속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당시 청와대에 파견돼 있던 전직 경찰 고위 간부들 역시 재판 중이다.

경찰청 본청(本廳)에 소속된 약 40명 규모의 경찰청 본청 정보경찰들은 국무총리실·기획재정부·국방부·금융위원회 등 장·차관급 정부 부처를 출입하며 정보를 수집한다. 과거 '한남동팀'이라고 불렸던 경찰청 정보분실(分室) 출신들이다.

이들의 주된 임무는 출입 기관 동향 파악과 인사 검증을 위한 '세평(世評) 보고서' 작성이다. 경찰 관계자는 "중요도가 낮은 지방의 정부기관들이야 지방경찰청 소속 정보경찰들이 맡지만, 서울·세종에 있는 주요 정부 부처는 본청이 담당한다"며 "한 달에 3~4건씩 인사 검증 작업도 벌인다"고 했다.

2017년 국정원 국내 정보 파트가 폐지됐기 때문에, 경찰 정보관들은 현재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국내 정보 수집 창구다. 본청 정보경찰들은 정부 부처 장차관과 독대하고, 실·국·과장급과 점심, 저녁을 함께할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한다. 한 과장급 공직자는 "보고를 기다리는 국·과장들을 제치고 정보경찰이 장관실로 곧장 들어가는 장면은 쉽게 볼 수 있다"며 "과거 국정원 정보관들이 떨치는 위세를 지금은 경찰 정보관들이 차지한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청 정보국은 최근 '지역 담당제'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청 정보경찰들이 서울-전북, 경기 동부-제주, 경기 남부-대전 등 전국을 지역별로 나눠 맡은 뒤, 해당 지역의 정보까지 챙겨 경찰청장에게 보고하고, 필요에 따라 청와대에 보고하겠다는 취지로 알려졌다. 본청 정보경찰이 18개 지방경찰청 소속 정보경찰을 만나 지역 동향을 수집하는 방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지역 담당제라는 것이 결국 지역 여론이나 민심을 수집하는 것일 텐데,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각 지역 정치 정보가 자연스럽게 수집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경찰의 정보 수집 범위를 범죄·안보 정보로 제한한다는 취지와 어긋나는 것"이라고 했다.

경찰청은 정보경찰들의 정보 수집 의무도 대폭 강화시켰다. 지금까지는 정보경찰 한 명이 일주일에 2~3건의 정보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경찰청은 최근 "설 이후부터 1인당 일주일에 5건의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4~5일엔 외근 정보경찰을 지휘하는 정보4과장 주재로 회의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정보경찰들은 '1일 1건(件) 보고를 지키지 않을 경우 월 근무평가에서 최하점을 받아도 감수하겠다'는 취지의 서약서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보경찰은 "정보경찰 개혁 국면에서 이 정도까지 업무를 강화하는 이유에 대해 내부에서도 궁금증이 많다"고 했다.

본청 정보경찰들의 '근무 기강 확립' 지시도 내려왔다. 일단 사적 모임을 제외한 골프 약속은 잡지 말라는 업무 지침이 시행 중이다. 사적 모임이라도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를 어기면 근무 평가에서 감점을 받게 된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밤에 만취해서 과장 전화를 못 받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말 것' '타깃을 정해서 목적을 가지고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지침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추진되는 경찰의 정보 수집 기능 강화는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선거 국면에서는 자연히 선거 관련 정치 정보 보고가 많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 결과에 따르면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은 부임 직후인 2017년 8월부터 울산경찰청 소속 정보경찰들에게 수차례 "정보경찰이 밥값을 못 하고 있다" "사회단체와 지도층, 울산시 공무원들의 비리를 수집하라" "선거 사건 첩보를 수집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 청장은 송철호 울산시장의 청탁을 받고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표적 수사'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