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미래의 역사'라는 책이 있다. 과거 사람들이 상상한 미래의 모습을 모아놓은 책이다. 100년 전 사람이 그린 미래 도시는 고층건물 사이로 쌍엽기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당시 최첨단 기술은 라이트 형제가 발명한 비행기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상상에서는 비행기가 고층빌딩 사이를 날아다니는 것이 최고의 상상이었다. 바다에서는 잠수함이 다녔다. 그런데 잠수함을 끄는 것이 고래로 그려져 있다. 말이 끄는 마차만 보던 사람들이 상상한 유일한 동력원은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상상은 많은 경우 자신과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다음 시대의 파리는 어디일까

얼마 전 현대자동차가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발표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쌍엽기가 날아다니는 도시를 꿈꾸는 사람의 그림자를 엿보았다. 드론 교통수단은 딱 그 정도 수준의 미래상이다. 드론은 축소판 헬리콥터다. 프로펠러가 2개면 헬기고, 여러 개가 달리면 하늘을 나는 자동차다. 수톤 무게의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것은 헬기가 나는 것과 똑같다. 그런 비행체가 열 대만 날아다녀도 시끄러워 살 수 없을 것이다. 드론 택배 역시 소음 민원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다. 노이즈캔슬링 기술로 소음을 없앴다고 치자. 그래도 먼지를 일으키는 바람 때문에라도 안 된다. 도시에서 프로펠러로 운송하겠다는 상상은 이쯤에서 접는 것이 낫다. 다빈치부터 시작된 수백 년 된 아이디어다.

도요타자동차는 최근 우븐시티(Wooven City) 계획을 발표했다. 이 도시의 여러 아이디어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지하에 만들어진 운송 전용 도로망이다. 도시의 지하 1층에 자율주행 로봇들만 다니는 도로망을 만들었다. 이 로봇은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각 세대의 거실로 직접 물건을 배달한다. 현재 자율주행 자동차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이 운전하는 자동차와 부딪치는 사고다. 이런 사고는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반응 때문에 발생한다. 자율주행차만 따로 다닌다면 교통사고는 없다. 자율주행 운송 로봇용 지하 도로망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운송 로봇만 다니면 천장고도를 사람 키보다 낮게 만들 수 있다. 사람이 피자를 살 때에는 자동차를 타고 가서 피자 한 판을 사와야 한다. 몇백 그램짜리 피자 배달을 위해 자동차 1톤과 사람 몸무게까지 운반되어야 한다. 배달 앱으로 시키면 오토바이와 한 명의 무게가 이동한다. 지하 운송 로봇이라면 배달원 몸무게와 배달원을 운반하는 교통수단의 크기와 무게를 줄일 수 있다. 최소 에너지 소비로 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물론 초기에 지하 운송 도로망을 만드는 비용은 들겠지만 장기적으로 투자비를 회수하고도 남을 것이다.

서비스망을 지하에 설치하는 방식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파리에서는 수백 년 전 지하에 하수도망을 설치하여 더러운 물을 배출했다. 지금은 모든 도시가 하수도망을 가지고 있다. 처음 하수도망을 건설할 때 사람들은 높은 비용에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파리는 하수도 덕분에 전염병 없는 도시가 되었고, 덕분에 유럽 전역에 전염병이 유행할 때 파리에 가면 살 수 있는 건강한 도시가 되었다. 부자들이 모여들었고, 부자들에게 그림을 팔기 위해서 화가들이 이사 왔다. 파리는 문화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새로운 도시 시스템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은 창의적인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국제적 도시 경쟁력이 커지고,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이 된다.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게 숨겨지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휴대전화의 키보드는 스마트폰이 되면서 스크린 속으로 숨어들어 갔다. 수십 년 내에 지하 운송 로봇 도로망을 지금의 하수도처럼 필수 요건으로 생각할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이 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도시가 다음 시대의 파리가 될 것이다.

고정관념 없애야 새로운 도시 만든다

과거에는 정부가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었다. 아파트, 고속도로, 전화, 지하철은 정부 주도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왜 지금은 정부 주도하의 '라이프스타일 기술 혁명'이 일어나지 못할까? 기존의 정부 주도 개혁은 선진국을 따라 하기만 하면 되었던, 엄밀히 말하면 기술 개혁이 아니라 기술 도입이었기에 가능했다. 기존에 없던 기술 혁명을 공기업이 주도할 가능성은 없다. 공기업은 위기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LH와 국토부가 스마트시티를 만들기는 어렵다. 스마트시티 혁신은 현대기아차, 삼성전자, SK텔레콤 같은 대기업이 협력해서 만들어야 한다. 도요타는 자사의 미래를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것에서 찾으려 시도한다. 도시를 업그레이드하고 그 안에서 자동차 회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방식이다. 기업의 먹거리는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비즈니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애플은 전화기가 소통하는 장치이며, 소통은 사람 간의 소통뿐 아니라 정보와도 소통해야 한다고 정의 내렸기에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었다.

기차 레일의 폭은 마차 바퀴 폭에 따라서 결정 난 것이다. 마차 바퀴의 폭은 마차를 끌기 위해서 필요한 말 두 마리 엉덩이의 폭을 합친 너비다. 우리가 쓰는 기찻길 폭은 말 엉덩이 폭이 결정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엔진이 끄는 기차가 이 폭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도시에서 '말 엉덩이 폭' 같은 고정관념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자. 그것을 없애면 새로운 도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새로운 기업을 만들 수 있다. 희망적인 미래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