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주21세기병원은 도심 속 섬처럼 고립무원이었다. 출입문은 밧줄로 묶여 폐쇄됐고 정문에는 '병원 사정으로 임시 휴진합니다'라는 안내 글이 걸려 있었다. 3층에 있던 입원 환자 25명과 의료진 12명 등 37명은 앞으로 14일 동안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해야 한다. 3층에서 모녀 관계인 우한 폐렴 감염증 16번 확진자(42)와 18번 확진자(20)가 지난 4일과 5일 잇따라 나와 3층 입원 환자 전원이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외부와 완전히 격리됐다. 앞서 의료진과 환자 121명이 지난 4일부터 외부와 접촉이 차단됐다가 이날 84명이 저위험군으로 분류돼 광주소방학교 등 격리 생활 시설로 이동했다.

18번 환자가 입원했던 3층 환자들은 통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주시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지난달 30일 어깨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인 윤모(50)씨는 이날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당국이 깜깜이 정보로 일관해 이웃 환자가 확진자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또 "확진자 2명이 바로 옆에서 생활했는데도 상황을 몰라 70대 노모와 20개월 조카 등 가족 4명이 면회를 왔다"며 "가족에게 변이라도 생기면 나라가 책임질 수 있느냐"고도 했다.

병원 폐쇄되자 창문 통해 물건 반출… 임시 격리장소 들어서는 접촉자들 - 5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21세기병원에서 외부와 격리된 환자의 보호자로 추정되는 한 시민이 1층 창문을 통해 안쪽에서 내보내는 물건을 받아 들고 있다(왼쪽 사진). 이 병원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16번과 18번 확진자 모녀가 있었던 곳이다. 오른쪽 사진은 병원 입원 환자 중 감염 위험이 낮은 것으로 분류된 환자들이 이날 오후 임시 격리 장소인 광산구 소방학교 생활관 건물에 들어가고 있는 모습.

16번 확진자는 지난달 27일 이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고 나서, 인대 봉합 수술 이후 1인실에 입원 중인 18번 확진자를 간병했다고 한다. 의료 당국은 18번 확진자를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전남대병원으로 이송했고, 21세기병원 3층 입원 환자들은 다른 층 1인실로 격리 조치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최민혁 21세기병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와 공무원의 초동 대처가 잘못됐다"며 "우리는 신종 코로나가 의심된다는 소견서를 써 환자를 전남대병원에 보내는 등 초기 대응을 잘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달 27일 16번 환자가 몸 상태가 안 좋아 외래 진료를 받았는데 열이 나고 폐렴기가 있어 신종 코로나를 의심해 광산구보건소에 전화를 했다"며 "하지만 '중국에 다녀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사 대상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최 병원장은 지난달 27일 담당 의사가 16번 확진자를 전남대병원 응급실로 보낼 때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 폐렴의증'이 적힌 진료의뢰서를 첨부했다고 한다.

병원 주변 주민들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에서 40m 떨어진 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40대 여성은 "태국·싱가포르에 다녀온 사람도 얼마든지 병을 옮기는 것 아니냐. 일찍 문을 닫고 당분간 장사를 쉬겠다"고 말했다. 병원 인근 운남동 삼성아파트에 거주하는 신모(68)씨는 "병원 주변은 얼씬도 안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우한 폐렴 16번 확진 환자가 사는 곳으로 알려진 광주 광산구 산정동 한 아파트 단지는 대낮인데도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24층 아파트 9개 동(570여 가구)이 들어서 있는데도 가끔 오가는 배달 오토바이 외에는 사람이나 차량의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전화로 연결된 주민 이모(41)씨는 "어제 오후부터 밖에 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 돌봄교실이 문을 닫아 연가를 내고 함께 집 안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확진 환자의 아들이 다녔던 광산구 D어린이집은 일시 폐쇄됐다. 출입 통제 안내문을 내건 채 건물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어린이집 앞을 지나던 한 주민(33)은 "어제까지 우리 아이도 어린이집을 다녔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확진자 2명이 격리 병실에서 치료받고 있는 전남대병원은 각 병동 출입문을 1곳씩만 개방한 채 보호자 1명 외에는 면회를 전면 통제하고 있다.

시민들은 모임과 행사를 취소하거나 외출을 자제하는 등 극도로 움츠러든 모습이다. 광주시 문화예술회관은 소속 공무원이 21세기병원에서 가족을 간병한 사실이 알려지자 지난 4일 오후 3시부터 시립예술단 8개 단체 단원 300여 명의 출근을 금지했다. 광주우편집중국은 설 연휴 16번 확진 환자와 접촉한 직원이 있는 것으로 확인돼 5일 임시 폐쇄하고 직원 350여 명을 자가 격리 조치했다. 광주시는 6~7일 이틀간 광주 시내 모든 어린이집(1122곳), 유치원(290곳)에 휴원 조치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