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제3국 통한 전파 차단 방역망 뚫린 과정 드러나
광주21세기병원⋅전남대병원 의뢰에 퇴짜 놓은 질본⋅광산구보건소
5년전 메르스 1번 환자 삼성서울병원의 의뢰 묵살한 과정 판박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에 걸렸다고 국내에서 16번째로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가 판정을 받기 전 찾은 광주 지역 병원 두 곳이 보건소에 의심된다는 의견을 잇따라 제시했지만 중국 방문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아 병원내 감염을 일으켜 결과적으로 방역망이 뚫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사태를 촉발한 당시 1번 환자가 병원내 감염을 일으킨 과정과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5년이 흘렀지만 달라진게 없다는 것이다.
5일 광주시와 의료기관 및 보건당국 등에 따르면 16번 확진자가 발열과 폐렴 증상으로 중형병원인 광주21세기병원을 방문한 것은 지난 달 27일이다. 이 병원 의료진은 환자의 증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초기 증상과 유사하다고 판단해 질병관리본부 콜센터 '1339'에 전화를 걸어 상담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 측으로부터 "중국 방문 이력이 있어야 의심 환자로 분류된다"는 내용의 답변을 받았다. 광주 광산구보건소에도 연락했지만, 마찬가지 통보가 온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은 이 같은 통보에도 환자의 상태가 의심돼 선별진료소가 있는 전남대병원으로 가보라고 했고, 환자는 같은 날 전남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 환자는 21세기병원 측이 작성해준 진료의뢰서도 가지고 있었다. 의뢰서 안에는 "태국 여행 중 공항 출국장에서 상태 안 좋은 환자와 접촉이 의심되고, 변종 바이러스 폐렴이 의심된다"는 내용이 적혔다.
전남대병원 측은 환자를 선별진료소로 옮겨 동구보건소에 연락했고 거주지에 문의하라는 답변에 다시 광산보건소에 연락해 이 사실을 알렸지만, 보건소 측은 다시 "검사할 것까진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전남대병원은 '중국 방문 이력'을 따지는 지침에 따라 의심 환자로 분류하지 않고 혈액검사 등을 했고 발열은 있지만 폐렴 증상은 확인되지 않아 약만 처방하고 환자를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 환자는 증상이 심해져 다음 날 21세기병원을 다시 찾았고, 2월 1일과 2일에는 고열(38.7도)에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고 호흡곤란까지 생기자 3일 전남대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전남대 병원 의료진은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고 밝혔고, 이에 환자는 직접 '1339'에 검사가 필요한지 여부를 문의하였으며, '1339'에서는 의사 소견이 따라주길 권고했다.
그는 격리 중인 4일 최종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진단 검사 건수가 제한된 상황에서 중국 방문 이력을 먼저 따지는 지침 때문에 조기에 의심 환자 분류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보건당국은 늦어도 오는 7일 비합리적인 대응 조치 매뉴얼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적절한 조치가 늦어져 8일간의 공백이 발생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보건당국과 의료기관은 중국 방문 이력을 먼저 따지는 지침 탓만 하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보건소가 거부한 게 아니고 현재 지침을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결과적으로 퇴짜를 놓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광산구 보건소와 전남대병원 측은 "16번 환자가 최초 병원을 찾을 당시만 해도 신종 코로나 발병 초기라 중국 외 감염자가 거의 없어, 지침대로 중국 방문 이력을 따져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정부가 중국 방문자 우선 검사에 지침을 둔 것은 하루 검사 가능 건수가 제한됐기 때문이다.
메르스사태 1번 환자도 유행지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닌 바레인과 카타르를 경유해 입국했다는 이유로 검역 대상에서 제외됐다. 당시 이 환자를 진료한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검사를 요청했지만 이번 처럼 검사 대상이 아니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때문에 이 환자는 평택성모병원과 삼성서울병원등에 입원한 기간 동안 접촉한 33명을 감염시키는 ‘슈퍼 전파자’가 됐다.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는 5년이 흐른 뒤 같은 사태가 재연되자 뒤늦게 국내 시약 제조사가 개발한 실시간 유전자증폭(PCR) 검사법 진단키트 제품을 50여개 민간의료기관에 우선 공급해 하루 검사 가능 물량을 2000여건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시행할 수 있는 대상도 7일부터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중국 입국자 중 폐렴 소견이 있을 때만 의심 환자로 분류해 검사했으나, 중국 입국자가 14일 이내 발열·기침 등 증상이 있으면 의심 환자가 아니라도 모두 진단검사를 받을 수 있다. 중국 입국자가 아닌 확진 환자, 의사 환자, 조사대상 유증상자 등도 선별진료소 의사 판단에 따라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중국 외 제3국에서 감염된 환자의 국내 전파 가능성은 일본에서 감염된 후 국내에 입국한 중국인 관광 가이드(12번째 확진자)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공개된 2월 1일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됐었다. 정부는 일본에 이어 싱가포르와 태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 환자들이 국내 입국한 뒤 확진판정을 받은 후에야 다급하게 제3국 통한 전파를 막는 방역망 확대방안을 내놓아 또 뒷북을 쳤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