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약사·음식칼럼니스트

약사로는 드물게 여러 매체에 음식 관련 글을 쓰고 방송 출연도 활발히 하는 정재훈(46·사진)씨는 "의식동원(醫食同源) 혹은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했다.

"과거 영양 결핍 시대에는 일정 부분 맞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아닙니다. 특히 '암에는 무슨 음식이 좋고, 위장병에는 뭘 먹으면 좋고'라는 식의 말은 위험합니다.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을 너무 약처럼 생각하지 마시라는 메시지를 글과 방송을 통해서 전하고 싶습니다."

요약하면 이런 주장이다. 약은 약사에게, 음식은 요리사에게.

그의 단골 식당 중 네 곳을 공유한다. "좋은 책을 읽으면 아이디어가 샘솟듯, 먹으면 영감을 주는 음식을 내는 곳입니다."

치차로

"단순해 보이지만 숙련된 기술 없이는 만들어내기 어려운 요리가 많은 식당입니다. 프라이팬에 초리조(매운 스페인 소시지)를 굽고 남은 기름에 달걀을 요리해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어주는데, 육즙 가득한 초리조도 훌륭하지만 스크램블 에그의 놀랍도록 부드러운 질감과 향은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여요. 불과 기름만으로 어떻게 이런 질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호기심을 자극하죠."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스페인에서 요리를 배우고 벨기에·한국의 레스토랑에서 일한 이경섭 셰프가 스페인 타파스를 고급스럽게 풀어내는 공간. 스페인 북서부 바스크 지역에서 영감받은 타파스를 선보인다.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을 두루 갖췄는데 특히 내추럴와인 비중이 높다. 초리조 스크램블 에그 1만원, 화이트 앤초비 메가 크런치 1만3000원, 갈리시안 문어 1만9000원.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14길 22.

서울 성수동 '치차로'의 '초리조, 스크램블 에그'(왼쪽)와 '화이트 앤초비, 메가 크런치'.

엘 초코 데 떼레노

"숯불에 구운 가자미를 올리브오일에 흠뻑 적셔 마늘과 함께 입에 넣으면 요리는 역시 '불의 예술'이라며 감탄하게 됩니다. 숯불에 구운 스테이크도 먹지 않을 수 없는 메뉴고요. 요리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격의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이런 곳이 더 많아지면 하는 바람입니다."

서울 북촌에 있는 미쉐린 1스타 스페인 레스토랑 '떼레노'에서 운영하는 한남동의 바스크 스타일 그릴바(grill bar). 숯불만으로 각 식재료의 맛을 고스란히 살려낸다. 식당을 꽉 채우는 커다란 ㄷ자형 테이블 안쪽은 주방, 바깥쪽은 손님들이 둘러앉아 먹고 마시도록 했다. 아는 사람 집에 초대받아 부엌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먹는 느낌이다. 아라인(생선구이) 4만원, 출레톤(소갈비등심 스테이크) 15만원(1㎏), 치피론(숯불에 구운 꼴뚜기·완두콩·완두순) 1만5000원.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 73 성아맨숀 1층.

쏠레이

"처음 방문한 날 깜짝 놀랐어요. 정말 파리에 온 줄 알았어요."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갔다가 요리에 빠져 10년 동안 배우고 일하다 돌아온 김영선 셰프가 지난 2018년 청담동에 마련한 레스토랑. 프랑스 본토의 맛과 서비스를 충실히 보여준다.

"프랑스 요리 하면 오래 끓인 소스와 육수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장시간 끓이기만 한다고 소스의 풍미가 좋아지진 않지요. 온도와 시간을 엄격하게 제어해야 하죠. 부드러운 살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마이야르 반응(단백질을 가열하면 갈색으로 변하며 풍미가 좋아지는 화학 반응)의 풍미를 살려낸 가리비는 그런 사실을 확인하기에 딱 좋은 요리입니다." 점심 코스 4만9000원, 저녁 코스 11만원.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70길9.

주옥

"신맛을 좋아하는 어린이일수록 새로운 음식 맛보기를 더 즐긴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저한테 딱 맞는 말 같아요. 어려서부터 신맛을 좋아했고 새로운 음식 맛보기를 즐겼거든요. 주옥은 식초를 활용해 산미(酸味)를 잘 살리는 식당이라는 신문 기사를 읽은 날 바로 찾아갔습니다."

직접 만든 다양한 식초를 적재적소에 사용해 코스 요리의 리듬감과 긴장감을 살려낸다. 전통을 존중하되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식으로 미쉐린 가이드로부터 별 1개를 받았다.

"서울에는 갈 때마다 일관성 있게 만족을 주는 레스토랑이 많지 않은데, 주옥은 늘 만족스럽습니다. 전 세계에서 오직 한민족만 먹는 들기름을 가장 잘 쓰는 곳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점심 코스 7만원, 저녁 코스 14만원. 서울 중구 소공로 119 더플라자호텔 3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