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F&B의 종전 명절 선물 세트(왼쪽)와 올해 설 선보인 선물 세트. 구성품 가짓수는 같지만 간격과 자리를 조정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였다.

홍보 대행사를 운영하는 김모(51)씨는 설을 맞아 고객사와 협력사, 지인 등에게 보낼 선물 세트를 사면서 내용물뿐 아니라 포장까지 신경 써서 확인했다. "저는 포장을 분리 배출하기 어려운 선물이 제일 받기 싫어요. '차라리 안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과대 포장한 선물을 받으면 나도 환경 파괴에 일조하는 것 같아 죄책감 들고요. 제 선물을 받는 분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설을 앞두고 유통업체들과 제조업체들이 '명절 선물 세트 포장 다이어트'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체적으로 선물 세트 상자 크기가 작아지고, 뚜껑을 열어보면 물품이 이전보다 눈에 띄게 촘촘하게 배치됐다. 가격 대비 만족도 좋은 명절 선물로 인기인 캔햄과 참치캔, 조미김, 식용유 등을 생산하는 동원F&B와 CJ제일제당은 선물 세트 구성품을 재배치하고 간격을 줄여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였다. 동원F&B는 "이번 설에 출시한 '필(必)환경 선물 세트'로 플라스틱 무게를 평균 20% 감량했다"며 "이렇게 연간 40t, 500㎖ 생수병으로 환산하면 250만개에 달하는 플라스틱 절감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식용유는 재활용이 어려운 유색(초록색)에서 투명 플라스틱 병으로 전면 교체했다. 선물 세트를 담는 가방(쇼핑백)도 코팅하지 않은 종이 재질로 교체했고, 합성수지로 만들던 가방 손잡이도 종이로 바꿔 재활용률을 높였다.

백화점들도 명절 선물 세트에 친환경·재활용 가능한 포장재를 도입했다. 현대백화점은 이번 설부터 버섯 등 일곱 품목 선물 세트에 사탕수수를 원재료로 하는 종이 상자를 썼다. 사탕수수 종이 상자는 흙에서 3개월이면 자연 분해되는 반면, 일반 종이 포장재는 최단 5개월에서 최장 2년 걸린다. 롯데백화점도 올해 설부터 굴비 선물 세트에 3중 골판지로 내구성을 강화하고 방수 기능이 있는 재활용 종이 가방을 포장재로 사용했다. 신세계백화점은 분리 수거 가능한 보랭 팩을 도입했다. 분리 배출이 되지 않았던 종전 젤리 타입 냉매제를 물로 바꿨으며, 보랭 팩 외부 포장재도 종이로 만들었다.

그동안 명절 선물 세트는 "포장을 샀더니 선물이 딸려 왔다"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과대 포장이 문제였다. 과대 포장이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라는 비난이 잇따르자 정부는 명절 선물 세트 과대 포장을 집중 단속하고 있다. 올해도 환경부는 17시·도에서 선물 세트 과대 포장을 집중 단속·점검한다. 과대 포장으로 판명되면 과태료 100만원을 물며, 추가 적발될 경우 2차 위반 시 200만원, 3차 위반 시 300만원을 문다.

유통·제조업체들이 선물 세트 포장 다이어트에 나선 건 정부 단속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대 포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선물 세트 판매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게 더 큰 이유다. 지난 2018년 녹색소비자연대가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 1000명 중 64%가 '과대 포장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답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환경 등을 고려하는 윤리 소비가 명절 선물 세트 선택에도 중요 변수가 된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