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리그(KBL 하부리그) 경기를 뛰는데 한 심판이 물어보더라고요. 힘들지 않냐고요."

너무 많이 뛴다고 심판마저 걱정하는 프로농구 선수가 있다. 인천 전자랜드 가드 홍경기(31·184㎝)다. 그는 올 시즌 정규리그를 뛰면서 2군 리그 격인 D리그 코트에도 나선다.

그의 이번 달 스케줄을 살펴보면 '농구 마라톤'을 하는 것 같다. 3일 울산과 5일 창원 원정경기를 치른 뒤 서울로 올라와 6일 D리그(2군) 경기에서 뛰었고, 다시 부산으로 이동해 8일 경기에서 팀과 함께한 뒤 다시 홈인 인천으로 돌아와 10일과 14일 홈 경기를 치렀다. 이름대로 '경기'의 연속이다. 홍경기는 전자랜드가 KCC에 80대75로 승리한 14일 4분여를 뛰며 3점슛 1개를 넣었다.

"저, 덩크슛은 한번도 해 본 적 없어요" - 농구 선수가 되고 나서 덩크슛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는 홍경기가 림에 매달려 활짝 웃는 모습. 그는 "수비를 잘해서 유도훈 감독님께 칭찬을 받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부터 14일 KCC전까지 팀 17경기 중 16경기, 그리고 중간중간 매주 월요일 치러지는 D리그에도 한 번 빠짐없이 출근 도장을 찍었다. 그는 과부하가 걸린다는 이유로 구단 지시에 따라 한 경기(12월 29일 오리온전)는 쉬었다.

지난주 홈구장인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만난 홍경기는 거듭된 강행군에도 "요즘처럼 즐거운 적이 없다"고 했다. 그토록 간절했던 무대에 서 있기 때문이다.

◇꼬여만 갔던 농구의 길

홍경기의 농구 인생을 돌아보면 코트 위 1분 1초가 더없이 소중해진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2011년 동부에 입단한 그는 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2011∼2012시즌 평균 2분 출전(0.6득점)에 그쳤다. 시즌이 끝나고는 반강제로 입대했다. 라인업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샐러리캡(팀 연봉 상한제)을 맞추기 위한 구단의 결정이었다.

"강원도 고성에서 2년 동안 장갑차 조종수로 군 생활을 했어요. 장갑차를 정비하면서 농구공을 잡고 있어야 할 손이 공구를 잡고 있다는 생각에 참 슬펐습니다."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동부엔 그가 설 자리가 없었다. 찾는 팀도 없어 은퇴했다. 1년간 농구 교실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는 도중 KT에서 연락이 왔다. 2015∼2016시즌 KT 유니폼을 입었지만,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시즌이 끝났다. 두 번째 은퇴였다.

"포기할 법도 했는데 이대로 농구를 놓기 싫더라고요.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실업팀 문을 두드렸습니다."

홍경기는 실업팀 이글스 멤버로 2016년 전국체전 8강전에서 당시 허훈(KT)· 최준용(SK)이 이끌던 대학 최강 연세대를 상대로 36점을 퍼부으며 승리를 이끌었다. 이듬해 1월엔 몽골 리그로 건너가 넉 달가량 뛰었다. "힘이 남다른 몽골 선수들과 몸을 부대끼던 기억이 생생해요. 환경은 열악했지만 경기를 뛰어서인지 참 재미있었습니다."

◇D리그는 기회의 땅

그즈음 홍경기는 이름을 바꿨다. "원래 이름은 '세용'이었는데 부모님이 '밝을 경(炅)'에 '터 기(基)'를 쓴 새 이름을 받아오셨죠." 그래서였을까. 전자랜드의 러브콜을 받았다.

홍경기는 2017∼2018시즌부터 전자랜드 소속으로 뛰고 있다. 첫 두 시즌만 해도 정규리그 출전에 의의를 두는 수준이었지만, 올 시즌엔 평균 13분35초 동안 코트에 머물러 있다.

그는 지난 10월 삼성전에서 프로 입성 8년 만에 첫 3점슛을 터뜨렸다. 지난달엔 네 차례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평균 4.5점으로 4위 전자랜드(19승14패)의 벤치 멤버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D리그에선 11경기에서 평균 32분씩 뛰며 19.4점을 올리는 에이스로 활약 중이다.

꾸준한 활약을 펼치면서 최근엔 팬도 많이 생겼다. 그는 신고 있는 운동화도 팬에게 받은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올 시즌이 제 '커리어 하이 시즌'이에요. 앞으로 세 시즌 정도만 더 후회 없이 뛰고 싶습니다. '봄 농구'도 해보고 싶고요. 힘들어도 코트 위라 행복합니다."


☞KBL(한국농구연맹) D리그

KBL(한국농구연맹) D리그는 NBA(미프로농구) D-리그를 모델로 탄생했다. 알파벳 D는 'development(성장)'의 줄임말이다. 1부 리그에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는 후보급 선수들이 경기 감각을 살리고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무대다. 각 구단이 1·2군을 따로 나누지 않고, 소속 선수 중 7명 이상 명단을 제출하면 D리그에 참가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소속 선수 누구나 별도 선수 등록 절차 없이 1, 2부 리그를 병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시즌엔 SK·KCC·전자랜드·현대모비스·LG 등 KBL 5팀과 상무가 D리그에 참여하고 있다. 주로 월요일 연세대에서 경기를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