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인 장충동 태극당 옆에는 동생뻘 되는 건물이 있다. 모양은 거의 같은데 크기는 태극당 절반쯤. 그러면서도 하얀 태극당과 대조되는 검은 외관의 무게감이 만만찮다. 1946년 명동에서 창업한 태극당이 1973년 이 자리로 올 때 창업자 신창근씨가 함께 지었다. 그간 눈에 잘 띄지 않다가 작년 말 세들었던 음식점이 나가고 리모델링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곳의 정체는 태극당 신경철(35) 전무가 지난달 시작한 레스토랑·카페 '농축원'이다. 태극당이 우유·계란을 생산하던 농장의 이름을 따왔다. 지난 8일 만난 신 전무는 "태극당은 오래되고 특별한 빵집으로 보존하고, 농축원은 장차 식품 유통처럼 새로운 일을 하는 플랫폼(기반)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신창근씨 손자인 그는 태극당 전무이면서 농축원 대표를 맡고 있다.

오래된 빵집 태극당과 새 레스토랑 농축원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디자인이다. ①태극당 종이봉투 그림을 바탕으로 만든 '빵 아저씨' 그림책. ②창업자 신창근의 손자인 신경철 전무. 주황색 장식장은 할아버지 유품을 손본 것이다. ③성주신을 눈[眼] 모양으로 표현해 디자인한 농축원 주스 병. ④검은 색상이 눈길을 끄는 농축원 외관. ⑤태극당 포장지 무늬가 들어간 수페르가 운동화. 태극당은 패션 브랜드들과 협업하면서 빵을 만드는 대신 포장지 무늬 같은 그래픽 소재를 제공했다.

신 전무는 프랜차이즈 빵집에 밀려 기울어가던 태극당의 부활을 이끈 경험이 있다. 비결은 디자인. 2012년 입사 당시 태극당은 "명맥만 유지하던 빵집"이었다. 1년쯤 카운터를 봤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대표인 아버지 건강이 악화되는 위기가 왔다. 누나들과 함께 경영에 나서야 했다. "젊은 고객들 눈에 들려면 소셜미디어에 노출돼야 했고 그러려면 디자인이 필요했죠."

대표적 작업이 창업 당시의 간판 글씨를 바탕으로 서체를 만든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올라가는 글부터 포장까지 이 서체를 적용했다. 소비자들이 접하는 태극당의 시각 언어를 통일한 것이다. 그는 "끝까지 하나의 목소리를 유지하는 게 브랜딩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샹들리에 구슬을 하나하나 닦아 다시 걸었을 만큼 실내 공간은 그대로 보존했다. 의류·운동화 브랜드 등과 협업도 활발하게 진행했다. 신 전무는 "태극당이 계속 살아 움직인다는 표현으로 협업을 했다"고 말했다. 오래된 빵집 태극당은 때마침 불어온 뉴트로 바람을 타고 '디자인 빵집'으로 소문을 탔다. 고객이 늘면서 매출 규모가 쇄신을 시작했던 2015년의 약 2배로 성장했다. 디자인계에서도 오랜 전통에 새로운 감각을 더해 거듭나기에 성공한 대표적 브랜드로 호명된다.

농축원을 열 때도 디자인에 공을 들였다. 1층 카페 유리벽에 세 쌍의 눈(眼)이 그려져 있다. 농축원 캐릭터다. "집을 지켜주는 성주신,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 장독대를 담당한다는 철융신을 상상했어요. 농축원은 식음료와 관련된 새집이니까요. 어디에나 그려 넣을 수 있고, 시선의 방향만 달리해도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죠."

앞으로 판매할 상품이나 기념품에도 이 캐릭터를 그려넣어 농축원의 상징으로 삼을 계획이다. 태극당에서 실감한 '캐릭터의 힘'이 영향을 미쳤다. "종이가방에 옛날부터 그려져 있던 그림으로 '빵 아저씨'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빵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할아버지의 삶을 소개한 그림책을 만들었더니 책을 보고 빵을 사러 오는 어린이가 꽤 늘었죠."

신씨는 "농축원을 태극당에 이어 장충동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만드는 것이 일차 목표"라고 했다. 건물 외관을 "가장 얌전하면서도 튀는" 검은색으로 한 것도 그래서였다. 태극당이 뉴트로 트렌드의 선두에 있었다면 농축원은 디자인계의 또 다른 화두인 '로컬(지역성)'을 정조준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