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주말뉴스부장

본지 주말뉴스부 기사 중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소개가 있다. 2015년 1월 티베트 자치구 포탈라궁으로 시작, 5년간 대략 250곳을 안내했다. 지난 주말 차례는 아름다운 체코 도시 쿠트나 호라였다. 다들 자기 나라 유산이 최고라고 주장할 테니 유네스코의 선정 기준이 있다. 1972년 세계유산협약 채택 이래 핵심은 하나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쿠트나 호라는 중세 유럽 최대 은(銀) 산지, 또 이곳 은화는 체코뿐만 아니라 국제통화였다는 점이 보편적 인정을 받았다.

가야 고분이 세계유산 국내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 게 2013년의 일이다. 고향 김해를 선양(宣揚)하고 싶어했던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취임하자마자 가야사(史) 복원을 국정 과제로 올린 문재인 대통령 때문에 오해들 하지만 '가야 세계유산' 프로젝트는 사실 7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왜 유네스코 본선은커녕 국내 예선마저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최근 이 분야 전문가들에게 전후 사정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두툼한 책 두 권 분량의 '안내서'와 '신청서'도 함께였다. 전자(前者)는 유네스코 관련 심사기관이 만든 '세계유산 등재신청 안내서', 후자(後者)는 김해 등 7개 관련 지자체가 작성한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신청서'. 유감이지만 비교해 읽으면 읽을수록 고대 왕국 가야의 등재는 험난해 보였다. 기자 혼자만의 편협한 판단일까.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문화재청 자문기구인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 분과위원회가 2019년 하반기 회의에서 이 사안을 7대1로 부결시켰다는 점이다. 대통령 관심 사업이라 당연히 통과될 줄 알고 축하 만찬을 준비했던 해당 군들은 그날 저녁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전술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의 세부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진정성, 완전성, 지역성. 그 유산이 진실하고 신뢰할 만한지, 처음 상태에 가깝게 유지되는지, 해당 지역은 보존 준비를 갖췄는지 여부다. 가야에는 첫 문턱부터 높았다. 검증 안 된 주장을 사실처럼 포장해 논란이 된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본성' 전시가 보여주듯, 2000년 전 고대 왕국은 여전히 대부분 미스터리다. 가야 당대의 사료인 중국 진수(233~297)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은 당시 한반도에 78개 나라가 있었다고 전한다. 고분군의 현존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게 모두 가야인지 일부는 신라나 백제인지,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소국인지 알 수 없다는 게 학자들의 판단이다. 2013년 잠정 목록에 처음 오를 때만 해도 신청 지자체는 김해·함안·고령 등 3곳뿐이었지만 2017년 문 대통령의 '국정 과제 선언' 이후 그 리스트는 7곳으로 늘어났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합의하기 더 어려워졌음은 물론이다.

세계유산은 나라별로 매년 하나밖에 신청할 수 없다. 각국의 무분별한 신청에 놀란 유네스코가 2018년 취한 조치다. 그 직전 해인 2017년 유네스코는 사전 심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력투구했던 '한양도성 세계유산' 프로젝트에 '등재 불가' 판정을 내렸다. 보류도 반려도 아닌 최하위 등급 등재 불가. 600년 도성이라지만 행정적으로만 관리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진 전통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유네스코는 이미 한국 등 몇 개국을 요주의 국가로 경계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유산은 어떤 세계적 기관이 그 가치를 먼저 알아봐주고 지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지키고 누릴 만한 가치가 있어 우리가 인정했으니 앞으로 세계인과 나누겠다는 약속이다. 이대로라면 우리의 고대 왕국을 '슬픈 가야'로 만들 뿐이다.